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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로 날아간 ‘마당을 나온 암탉’ 고향을 찾다
    지역소식 2016. 4. 17. 23:43


    황선미 작가 “고향 떠나던 두려움, 아직도 발바닥이 시큰거려”


    한번만이라고 제 품으로 알을 부화시켜보고 싶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잎싹(‘마당을 나온 암탉’의 주인공)은 양계장을 나와 죽은 닭들을 던져놓은 구덩이를 탈출하고, 든든한 울타리가 있는 마당을 나왔다. 야생으로 돌아간 잎싹은 청둥오리 알을 품어 꿈을 이루고, 죽어서야 하늘을 날았다. 


    ‘초록머리(잎싹이 품어 부화한 청둥오리)’가 북쪽 겨울나라로 날아갔듯, 죽은 잎싹은 전 세계를 날아다니며 자신이 꿈을 이룬 이야기를 전했다. 잎싹의 이야기는 러시아, 몽골 같은 겨울나라뿐만 아니라 여름나라인 베트남, 인도네시아를 거쳐 남쪽나라 브라질까지 퍼져나갔다. 


    잎싹과 함께 해외를 돌던 황선미 작가가 고향을 찾았다. 지난 11일 충남 홍성군 홍동면 밝맑도서관에서 ‘황선미 작가와 만남’ 행사가 열렸다.


    고향 찾은 세계적 작가 “홍성 추억은 행복한 원체험” 



    ‘마당을 나온 암탉’은 해외 29개국에 번역․출간됐다. 한국 작가로서 처음으로 영국에서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고, 폴란드 ‘올해 최고의 책’으로 선정됐다. 황 작가는 국제적인 아동문학상인 안데르센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으며, 런던도서전 ‘오늘의 작가’로 선정돼 초청되는 등 활동범위를 전 세계로 넓히고 있다. 


    2000년 출간된 이후 국내에서 ‘밀리언셀러’가 된 ‘마당을 나온 암탉’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227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으며 연극, 뮤지컬, 국악극 등 다양하게 변주되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황 작가는 어릴 적 흑백사진을 보여주며 ‘마당을 나온 암탉’이 탄생한 이야기와 고향에 대한 기억을 풀어나갔다. 그는 “가을에 은행을 따러 아이들이 몰려다니고, 가재가 사는 개울과 대숲 등 좋은 기억이 남아 있다”며 “7살에 고향을 떠났기 때문에 작가로서 원체험 정도의 기억밖에 없지만, 여기서는 힘들어 본 경험이 없다”고 말했다. 


    충남 홍성군 구항면 황곡리 419번지. 그가 기억하는 고향집 주소다. 행복했던 유년 시절이 끝난 것은 고향집을 떠나면서부터다. 황 작가는 “이곳을 떠나면서부터 상처투성이였다”며 “온 가족이 고생하고, 다치고, 굶고, 학교도 못가고. 고향을 떠나면서 고생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고향을 떠나던 새벽, 홍성역의 기찻길은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7살의 소녀는 부모의 손을 놓치지 않으려고 종종걸음으로 따라가다 기차가 멈춰 있는 선로에 신발을 떨어뜨렸다. 신발을 찾기 위해 기차 바퀴 틈새에 상체를 집어넣은 어머니. 출발을 알리는 육중한 기차의 굉음. 그는 “나 때문에 엄마가 다칠까봐, 그 때의 총체적인 두려움과 떨림으로 인한 시큰거림이 아직도 발바닥에 남아 있다”고 말했다. 



    잎싹의 이야기, “아버지를 기억하는 방법”


    ‘초록머리’를 키운 엄마가 ‘잎싹’이고 황 작가가 잎싹의 이야기를 탄생시켰으니, 그는 초록머리의 할머니쯤 되겠다. 하지만 잎싹의 모델은 황 작가의 아버지였다. 초고를 쓸 당시, 작가의 아버지는 말기 암 환자였다. 


    황 작가는 “아버지의 삶을 기억하고 싶었다”며 잎싹의 말과 행동을 글로 풀어내는 것이 “아버지라는 평범한 사람을 기억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아버지의 삶처럼 잎싹은 결국 죽음으로 이야기를 끝맺는다. “나를 잡아 먹어라. 네(족제비) 새끼의 배를 채우라”는 잎싹의 마지막 말도 “큰 솥에 밥 많이 해서 지나가는 누구나 먹고 갔으면 좋겠다”는 아버지의 유언과 닮았다. 


    “집안이 우울했던 시기에 아버지의 죽음을 앞두고 마침 떠오른 소재로 책을 냈지만 우여곡절 끝에 성과를 냈다”고 황 작가는 말했다. 당시 상금 2000만 원이 걸린 공모전에 이 작품을 응모해 아버지 병원비와 생활비에 보태려고 기대했지만 당선되지 못했다. 


    2011년 ‘마당을 나온 암탉’과 ‘나쁜 어린이 표’가 나란히 100만부 돌파 행사를 한 날이 글을 쓰는 작가로서 전환점이 됐다고 했다. 그는 “한 사람의 인생에서 이렇게 좋은 결정타가 있을 수 있다는 점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농민과 잎싹의 만남 


    황 작가의 고향 홍성과 ‘마당을 나온 암탉’의 연관성을 굳이 한 가지 더 찾자면 잎싹의 아들 ‘초록머리’다. 홍성은 오리농법 유기농쌀 재배로 유명한 곳이다. 


    단순히 오리라는 공통점만은 아니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 농사를 지으려는 ‘유기농 정신’은 자연의 본성을 찾아 나서는 ‘마당을 나온 암탉’과 맞닿는 지점이 있다.  


    홍순명 밝맑도서관 관장은 인사말에서 “오늘 고향이 나은 작가와 고향의 자연을 지키고 자연 순리에 따라 농사짓는 농민들이 만나는 자리”라며 “오늘 시작한 만남이 앞으로 많은 이야기로 계속 이어져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황 작가는 마당을 나온 암탉의 배경과 최근 활동을 설명한 다음, 주민들과 대화를 이어갔다. 마지막 두세 명을 제외하고 대부분 홍동초등학교 학생들이 질문을 주도했다. 작가와의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초등학생들이 묻고 작가가 답하는 내용에서 ‘마당을 나온 암탉’의 숨은 배경과 작가로서의 삶이 더 소상하게 나타났다.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  어떤 계기로 ‘마당을 나온 암탉’을 쓰게 됐나요? (아래 경어체 질문자는 초등학생)


    = 만화책을 보다가 소재를 얻었다. 친구네 집에서 친구네 아들의 만화책을 읽고 있었다. ‘길들여진 오리는 자기 알을 품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상했다. 며칠 후 TV로 ‘6시 내 고향’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는데 토종닭 이야기가 나왔다. 한 할머니가 ‘우리 집에 닭이 알을 낳고 품을 때가 되면 털이 빠진다’고 했다. 


    오리의 이야기와 닭의 이야기가 상당히 다르면서 일관성이 있었다. 가금류가 사는 방식인데 어떤 애는 길들여지고, 어떤 애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니. 둘의 차이는 무엇이고,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고민하게 됐다. 문제점이 있으면 고민을 통해 답을 찾는다. 그것이 주제가 된다. 운이 좋아서 얻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약하자면 만화책을 보다가, TV보다가 이 책을 쓰게 됐다.(청중 웃음)


    - 왜 작가가 되었나요? 작가가 꿈이었나요?


    = 어릴 때 작가라는 말도 잘 몰랐다. 꿈도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통해 작가라는 직업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같다. 혼자서 말을 잘 하는 아이였다. 혼자 즐겁기 위해 이야기를 잘 꾸며냈다.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면 그것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에게 그것은 책 읽는 것이었고 나도 써보고 싶다는 감성을 건드린 것이다. 다른 것이 재미있었으면 다른 것에 몰입했을 것이다. 


    어른들은 ‘요즘 뭐가 좋다더라’라고 이야기 하지만, 우리가 어릴 때 이런 세상이 존재할지 몰랐다. 여러분이 살아갈 세상은 훨씬 다를 것이다. 행복하게 살려면 뭘 좋아하는 지 빨리 알아야 한다. 부모님이 옆에서 말해주는 것 보다 ‘난 이게 더 좋아’라고 말하는 것.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하고 싶다. 



    어릴 때는 책이 귀해서, 숙제를 대신해주고라도 보고 싶은 것이 책이었다. 우리 집에는 하나도 없었으니까. 6학년 때 처음으로 동화책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읽을 수 있는 책은 국어사전이었다. 국어사전은 참 좋았다. 세상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사전이 많은 이야기를 이끌어 준다. 다만 책을 읽는 것과 작가가 되는 것은 다르다. 책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도 중요하다.


    - 잎싹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왜 죽어요?


    = 우리 아버지가 모델이라 그랬다. 말기 암 환자였다. ‘곧 돌아가시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아버지를 그림으로 그려서 기억했을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작품을 쓰는 것은) 평범한 한 사람을 기억하는 방법이었다. 오리와 닭이라는 소재를 두고 누구를 주인공으로 할까 고민하면서, 본능을 읽어버린 애보다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애가 주인공이 됐다. 


    주인공인데 닭은 용감하지도 멋지지도 않고 머리 나쁜 동물의 대명사다. 주인공은 평범함을 보여주는 인물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평범하지만 내공을 가지고 소신 있게 밀고 나가는 사람을 주변에서 찾았는데 바로 아버지였다. 열심히 살았으나 팍팍했던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선택했다. 잎싹이 혼자 중얼거리는 것도 아버지의 모습이고, 마지막 엔딩도 아버지 유언이다. ‘큰 솥에 밥 많이 해서 지나가는 누구나 먹게 했으면 좋겠다.’ 아버지의 그런 유언이 아니었으면 이런 식의 엔딩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아버지의 가치관, 고집 그런 것들이 이야기에 나와 있다. 



    ‘어떻게 사람이 죽으면 끝이 나버리는 걸까. 얼마나 기구한 관계인데, 죽는다고 끝나나. 다음 세상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엔딩에 다른 세상으로 날아가는 것 같은 장면을 에피소드처럼 남겨 놨다. 아이들은 마음에 안들 수도 있다. 이야기도 슬프고 주인공도 죽고. (질문한 학생을 가리키며) 마음에 안 들면 다음 편은 네가 쓰면 돼.(청중 웃음) 자기 발상으로 새롭게 써보는 것도 좋다. 


    - 왜 주인공을 사람이 아니라 동물로 그렸나요?


    = 마당을 나온 암탉의 등장인물은 어른이다. 잎싹은 달걀 생산이 끝난 폐계니까, 사람으로 치면 40대 후반에서 50대 정도다. 하지만 아이들 이야기로 풀고 싶었다. 동물이 되면 그게 가능해진다. 이것이 아동문학의 매력이다. 장치에 따라 철학적 사고를 요구하는 내용도 아이들이 함께 읽을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 수 있다. 


    -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요?


    치매에 걸리지 않는 한 이야기를 계속 만들고 싶다는 것이 내 소원이다. 계속 하는 일이 글쓰기라 지루한 면도 없지 않다. ‘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글쓰기일까’라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글쓰기는 습관처럼 하고 있다. 책이 되든, 안 되든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도 글 쓰는 것이다. 

     


    - 동화작가 꿈꾸는 사람들 많은데, 어떤 노력해야 하나?


    = 일단 글은 본인이 쓰는 것이다. 도제도 안 되고, 대물림도 안 된다. 평생 가내수공업으로 하는 일이다. 혼자 책임지는 일이다. 결국 어떤 소재가 본인에게 들어와서 밖으로 나가는 방식이다. 어떤 사안이 포착되면 내 속으로 들어와서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아야 한다. 이야기를 멀리서 찾지 않고 본인이 어떤 성향인지 잘 알고 잘 봐야 한다. 


    학교에서 문예창작과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묘사다. 문장이 가장 중요하다. 자기 나라 문자를 제대로 쓸 수 없다면 글을 쓰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잘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원인이 결과를 치료한다. 원인을 교정하면 결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포착한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한데 그것이 관찰력이다. 표현하는 것은 감성과 더불어 제대로 된 문장력과 묘사다. 작가의 문체론은 묘사에서 나온다. 그런 것을 신경 써야 한다. 


    - 고향 홍성에 대한 기억은? 앞으로 홍성과 어떤 교류를 계획하고 있나?


    = 7살 정도에 떠나서 작가로서 원체험 정도의 기억밖에 없다. 여기를 떠나면서부터 상처투성이였다. 온 가족이 고생하고, 다치고, 굶고, 학교도 못하고. 여기서는 힘들어 본 적이 없다. 원체험은 좋게 남아 있다. 어릴 때 이웃집에 너무나 환상적인 언니가 살고 있었다. 윗집에 앉은뱅이 여자가 살고 있었다. 걸어다지니 못했다. 동네 사람들은 일하느라 얼굴이 까만데, 유독 하얗고 예뻤다. 동물을 좋아했는데 그 당시 토끼에 옷을 입혀 키우고 있었다. 부모님 이상으로 그 사람의 이미지가 굉장히 선명하고 좋게 남아 있다. 동물을 가축이라기보다 예쁜 자식처럼, 친구처럼 대하는 자세가 동화에 딸려 들어왔다. 좋은 원체험이다. 


    지금은 당진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데, 부모님 산소를 찾을 때 고향에 온다. 형제들과 주말에 조용히 왔다가 간다. 큰 집도 비어 있어서 누구를 만나지는 못한다. 앞으로 홍성과의 교류는 생각해봐야겠다. 


    - (청중)이사 오세요. 


    = 좋죠. (웃음)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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