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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대녕의 '누가 걸어간다'.. 작가란 무엇인가?
    독서방 2016. 4. 19. 10:38

    윤대녕의 소설집 '누가 걸어간다'를 읽었다. 내게 작가란 어떤 존재인지 생각하게 해준 책이다. 마흔 살을 넘긴(2004년 발간했으니 지금 작가의 나이는 40대 후반쯤 되겠다) 작가의 중후한 사색의 깊이를 맛볼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작가도 역시 동시대를 살아가는 상처 많은 인간이지만, 평범한 인간들보다 보다 먼저, 보다 깊이 생각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같은 독자는 그 사색의 결과물, 즉 작가의 창조물을 읽으며 작가에 제기한 인생의 문제를 사색할 수 있게 된다. 



    이 책에 실린 중단편 소설에는 다양하지만 중첩된 인물들이 등장한다. 결혼식 날 신부를 떠나보낸 남자, 그 남자를 떠나 세기말 가장 해가 늦게 지는 곳에서 자살하려는 여자, 매일 밤 같은 시간 사라지는 동거녀를 찾기 위해 남의 시간을 사는 남자, 아내가 없는 열흘 동안 분열된 자아와 대화하며 고뇌하는 남자... 모두 상실의 아픔에 상처받은 인물들이다. 


    소설 속에 작가 자신이 투명되어 있는 모습도 눈에 띈다. 특히 작가가 제주도에 기거하면서 쓴, '찔레꽃 기념관', '낯선 이와 거리에서 서로 고함', '올빼미와의 대화'에는 작가 자신이 등장인물로 등장하는 듯 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상실과 단절로 상처받은 인간들, 그들은 끊임없이 대화할 누군가를 찾아 헤맨다. 이 책의 해설에서 평론가는 이를 두고 정체성의 상실, 정체성의 위기라고 했던 것 같다. 윤대녕 작가도 정체성 상실을 고민하고 있고, 이 책은 읽은 나도, 이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도 '작가의 말'에서 "어찌된 일인지 내게는 작가이기보다 사람이기가 더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요즘 내가 인터넷신문 기자 질을 하면서 느끼는 혼란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다. 이번 주 주말 10년 만에 지리산을 찾는다. 결국 나의 상실된 정체성을 현실 공간에서 찾기는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이럴 때 현실 공간을 일시 정지 해두고 다른 공간에서 고민해 보는 편이 쉽다. 하지만 문제는 다시 현실 공간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점이다. 


    답을 찾아 돌아올지, 아니 적어도 현실에서 답을 찾을 수 있는 힘을 길러서 돌아올지 아직 불명확하다. 중요한 것은 이 소설의 등장인물처럼 나의 정체성을 찾아 몸부림을 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간혹 답을 찾았다고 착각하면서 살아가겠지. 그래봐야 내가 쳐 놓은 찔레꽃 울타리 안에서 유효한 답일 뿐일 지도. 나는 언제 그 울타리를 넘어 온전한 존재가 될 수 있을까.


    *폐쇄한 블로그에서 옮겨왔습니다.(작성일 : 2010.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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