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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럽 길거리 사물놀이 공연 3>파리에서 만난 예술가-아니타
    떠나기 2016. 4. 19. 11:18



     

    2003년 6월부터 7월, 한달간 유럽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것도 사물놀이 악기를 들고 유럽 각국의 거리를 누볐습니다. 그때 내나이 스물 셋. 군을 제대한 지 얼마 안된 겁없는 나이였습니다. 여행 당시 기록해 두었던 여행기를 한편씩 올립니다. 







    Rivoli 거리 59번가



    중세시대의 웅장한 건물들과 오래된 저택들이 즐비한 파리시내 한복판에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허름한 건물이 한 채 있다. 모든 것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파리의 미에 반항이라도 하듯이 59번가 건물은 괴귀한 탈을 뒤집어 쓰고 있었다. 우리는 그곳으로 아니타의 초대를 받았다.


    우리가 아니타를 처음 만난 건 파리에서 첫공연을 할 때였다. 첫 공연이라는 것이 그렇듯이, 머릿속에는 두려움과 긴장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더군다나 마땅한 장소를 찾아 헤매다가 큰 마음 먹고 공연을 시작하려던 곳에서 프랑스 경찰에게 제지당하고 나니, 그렇지 않아도 조그맣던 자신감은 반으로 줄어들어 버렸다. 그렇게 민복을 갖춰 입고 악기를 멘 채 파리시내를 헤매다가 여기서 좌절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해가 뉘엇뉘엇 지는 저녁 무렵에야 조용한 공원 한 구석에서 우리의 첫공연을 가질 수 있었다.


    사람이 드문 공원에서 시작한 공연은 사람들이 조금씩 모여들면서 한껏 흥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우리는 거기에 힘을 얻어 조금전까지의 두려움은 모두 날려버리고 신나게 뛰고 두드렸다. 공연이 끝날 무렵 경찰이 소리를 듣고 왔었지만, 구경하던 파리시민들의 도움으로 박수와 환호속에 첫공연을 무사히 마칠수 있었다.


    공연이 끝나자, 사람들이 매일 이곳에서 공연을 할 건지 물었다. 경찰때문에 마땅한 공연장소가 없어서 힘들것 같다고 하니, 공연장소를 추천해 주기도 한다. 그렇게 첫공연에 대한 뿌듯함으로 정신없이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 사이에 아니타가 있었다.


    자신을 파리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라고 소개하면서, 우리의 사진을 찍고 싶다며 자신의 사무실에 한번 찾아와 달라고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니타는 우리의 공연을 보고 너무 좋았는데, 우리가 경찰을 피해다니면서 공연장소를 찾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자신이 활동하는 공간을 우리의 공연장소로 마련해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59. Rue de Rivoli

    이곳은 파리의 아웃사이드 예술가들이 자신만의 세계를 표현하고 활동하는 곳이다. 그동안 우리가 보아 온 파리예술의 미와는 동떨어진 아니, 거기에 저항하며 자신만의 다른 형태로 표출하는 그들의 예술이 더욱 신선하게 다가왔다. 우리의 공연을 깊은 관심을 가지고 들어주던 예술가들. 그들은 진정으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아니타는 우리에게 이런 말을 가끔 하곤 했다.


    “당신들이 이 곳에 오고 싶을 땐 언제든지 와도 괜찮아요. 우리는 예술활동을 하고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돈을 받지 않고 공간을 마련해 주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는 그들만의 예술을 ‘좋다, 나쁘다' 판정하지 않아요. 당신들의 음악이 저는 좋을 뿐이에요."


    우리는 그곳에서 세 번정도 공연을 가졌다. 그 건물에 있는 예술가들 앞에서도, 그리고 그곳의 예술활동을 보기 위해 온 방문객들 앞에서도 예술가 공동체의 한 부분이 되어서 공연을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파리의 예술가들과 함께 이런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벅차기도 하고 믿기지도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여행중이었기에, 언젠가는 떠나야 했고, 파리를 둘러보지 못하고 공연만 하는 것도 무리였다. 마지막 공연을 했을 때, 아니타는 많이 서운한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의 의사를 밝히자, 더이상 공연을 재촉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 건물 전체를 돌아보고 싶다는 우리의 부탁에 기꺼이 예술가 각자의 공간에 찾아가서 소개도 시켜주고, 자신이 직접 제작한 카드를 선물로 주기도했다. 이런 환대속에 우리는 아니타에게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을 가진 채 그 곳을 나오곤 했다.



    파리를 떠나는 마지막 날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아니타를 찾아갔다. 그리고 우리의 탈춤 사진엽서와 장구모양의 열쇠고리에 우리의 마음을 담아 아니타에게 전했다. 그동안 당신의 친절에 너무 감사하다며, 덕분에 파리에 좋은 추억을 가지고 간다며, 그리고 다음에는 꼭 한번 우리나라를 방문해 달라고. 서로의 얼굴에는 아쉬움만 묻어났다. 얼굴이 조금 상기된 듯한 아니타는 우리를 따스하게 포옹해 주었다.


    세상 어디를 가던지 정이라는 것은 통하기 마련인가 보다. 어쩌면 아니타는 정 많은 우리 민족보다 더 정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파리를 떠나와서도 종종 아니타 이야기를 하며 그때의 행복감에 젖어 그리워 하곤한다. 우리를 반겨주던 예술가들. 미셸, 요스케, 아리아 그리고 아니타는 우리의 삶의 한 구석에 소중한 사람으로 영원히 남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나마 파리의 예술가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경험은 앞으로의 내 삶에 큰 밑거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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