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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영씨의 시골일기<6> 빈집, 그곳엔 지나온 삶이 새겨져 있었다.
    시골이야기 2016. 7. 18. 10:00


    내가 살고 있는 마을에는 빈집들이 눈에 띈다. 우리 집 앞에도 두 채의 빈집이 있고 뒤에도 한 채의 빈집이 있다.


    우리 집에 놀러오는 지인들은 종종 이런 빈집을 탐내곤 했다. 우리도 빈집에 누군가 들어와 이웃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빈집에 대한 문의는 많은데 주인이 빌려주지도 팔지도 않는다고 전해 들었다. 그래서 만나지도 못한 빈집 주인을 속으로 원망하기도 했다.


    사람이 살지 않은 채 몇 년 만 방치하면 나무가 지붕보다 높이 자라고 풀이 자라 집의 형체가 사라진다. 지붕과 집 안 곳곳이 부식되기 시작한다. 결국 폐가가 되어 거미줄로 채워진 귀신의 집을 닮아간다. 아이들도 빈집에 들어가면 온갖 상상에 까무러치면서 뛰쳐나온다. 해가 지는 밤에는 근처도 안 가려고 한다. 귀촌 첫해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무서웠다. 빈집을 지나가면 뭐가 툭 나올 것만 같은 상상에 발걸음을 다시 돌려 집으로 줄행랑을 치기도 했다.


    ▲ 빈집은 곳곳이 무너져 가지만 애정을 가진 집주인이 매주 밭농사를 위해 찾아온다.


    몇 해가 지나면서 빈집이 그냥 방치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우리 집 앞에 있는 한 집에는 아들이 주말이면 어김없이 찾아온다. 살림은 하지 않지만 주변에 있는 텃밭을 일군다. 예전에는 감자 심을 때와 수확할 때 정도만 찾아왔다. 몇 해가 지난 지금은 나무도 곳곳에 심고 경작하는 작물도 훨씬 많아져 매주 찾아와 물을 주고 밭을 일군다.


    물론 빈집은 지붕 일부가 내려앉고 흙담 곳곳이 무너져 이대로는 집안에서 살림을 할 수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매주 찾아와 땀을 흘린다. 지난 가을에는 무를 수확했는데 우리도 필요하면 가져가란다. 몇 마디 이야기를 주고받으니 자신은 텃밭을 일구지만 자신이 먹는 것 보다는 주변에 나누어주고 싶어 이렇게 경작한다고 했다. 수확물에 대한 욕심보다는 그곳에 대한 애정으로 매주 그곳을 찾아오는 것이다.


    ▲빈집이지만 언젠가 다시 삶이 시작될 것 같다.

     

    또 다른 빈집은 지붕도 튼실하고 집안도 대부분 잘 살아있다. 그래서인지 부동산업자도 종종 그 집 주인에게 연락하기 위해 이장님 연락처를 묻곤 한다.(시골에선 직접 연락하지 않고 이장님을 통해 연락하는 것이 관례이다.) 우리 집에 놀러온 지인도 그 집이 궁금하다며 잠긴 대문이 아닌 다른 통로로 집안을 살짝 구경을 했다. 장독대도 그대로 놓여있고 살림살이도 그대로다. 하지만 우리가 이사 온 이후 6년째 비어 있고 누구하나 왕래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최근에 50대쯤 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집안에 있는 나무와 풀들을 정리하고 돌아갔다. 그 아저씨가 하루 종일 나무와 풀들과 씨름하는 순간 집에 새겨진 삶이 다시 살아날 것 만 같았다.


    우리 집 뒤편에 있는 빈집은 1년 전까지만 해도 할아버지 혼자 사셨던 곳이다. 최근에 몸이 편찮아 요양원으로 옮기면서 빈집이 되었다. 이 집은 산책하면서 종종 갔던 곳이라 지금도 가끔 들른다. 할아버지의 흔적이 없으니 자그마한 텃밭도 키 큰 풀들이 점령해 텃밭을 알아 볼 수 없다. 창문은 모두 닫혀있고 창고도 꽁꽁 잠겨있다. 하지만 이따금 그 집 앞에 차가 세워져 있다. 누군가가 찾아오는 것이다. 그 집에 자신의 삶이 새겨져있기 때문이다.


     ▲ 이 집은 깔끔한 할아버지를 닮았다.


    쉽사리 빌려주지도 팔지도 않는 우리 동네 빈집의 주인을 이제 원망하지 않는다. 그 집에는 가족들이 살아왔던 이야기가 고스란히 새겨져있기 때문이다. 집을 둘러싼 마을과 마당, 텃밭, 축사 등등 모든 곳에 삶이 있고, 놀이가 있었을 것이고, 가족들의 애환이 있었을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이 집안 곳곳에 새겨져 있어 타인에게 빌려줄 수도 팔수도 없었던 것이다.


    도시 사람들은 자본을 증식할 수 있는 수단으로 집을 대한다. 물론 나도 그랬다. 이런 사고구조로는 집이 품고 있는 또 다른 이야기를 상상할 수 없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한옥 집은 70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70년 동안 이 집에서 태어나고 죽고 자랐던 사람만 몇 명이나 될까? 종종 이집에 담긴 추억을 그리워 하는 30대의 청년과 친구들이 우리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내가 살고 있으니 그냥 주변만 서성거리다 돌아갔다. 60대의 노인 분도 우연히 이곳을 지나치는데 이곳에서 놀았던 기억을 회상하며 돌아갔다.

     

    시골길을 지나가다 만나는 빈집들을 보면 켜켜이 새겨져있을 삶이 궁금해진다.


    ▲ 우리집에도 70년 동안 다양한 사람들의 삶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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