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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늘 지갑만 열던 아빠가 망치를 들었다.
    시골이야기 2015. 12. 14. 18:44


    <꿈꾸는공작단 뒷이야기>청년들의 시골목수 도전기 





    "호연이가 원하는 의자 한번 만들어 볼래?"

     

    그 말에 혹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뚝딱 만들어 주는 아빠의 모습은 내 로망이었다. 하지만 글 쓰는 것 말고는 딱히 손재주가 없었다. 망치질도 가끔 아내가 한다. 소비를 싫어하는 아내는 "무조건 사려고 하기 전에 직접 만들 궁리부터 하라"고 면박을 주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아이들이 장난감을 원하면 대부분의 아빠들처럼 망치를 드는 대신, 지갑을 들고 문구점으로 향한다.

     

    옆 마을에 손재주 좋은 친구가 산다. 길익균(35)이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길자'로 불리길 좋아한다. 이 친구도 나와 비슷한 시기에 충남 홍성군으로 귀촌했다. 길자는 웬만한 것은 직접 만들어 쓴다. 탁자, 선반 같은 기본적인 가구들이지만 보통 아빠들이 보기에는 놀라운 손재주다. 내 아내가 말하는 '생산형 인간'이다(나는 소비형 인간이다).

     

    우리 아이가 원하는 의자를 같이 만들어보자고 길자가 제안했다. 재료비도 필요 없고, 목공을 가르쳐 줄 테니 같이 만들기만 하면 된단다. 아빠의 로망을 실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아이들이 직접 디자인한 '꿈꾸는 의자'를 어른들이 실현시켜주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단다.

     

    일일카페를 열어 '꿈꾸는 의자'를 전시하고 성금을 모아 지역의 난치병 아이에게 전달하겠다는 기특한 계획까지 세웠다. 프로젝트명은 '꿈꾸는 공작단'.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원이 주최, 주관하는 '문화이모작' 기획사업으로 선정돼 300만 원이라는 사업비도 확보했다. 아무튼 재주가 많은 친구다.

     

    "놀이동산처럼 기차의자 만들어 주세요"

     



    여덟 살 호연이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무엇이든지 네가 원하는 의자를 그림으로 그리면 아빠가 실제로 만들어줄게."

     

    녀석은 신이 났다. 아빠를 닮지 않아 그림 그리기나 만들기에 푹 빠져 지내는 아이다. 아빠가 드디어 자신의 취향에 맞는 걸 해주겠다니 얼마나 좋았을까. 10분도 안 돼서 그림 한 장을 그려왔다. 바퀴가 달린 의자 세 개가 연결되어 있고, 의자들이 원 모양의 선로를 달리는 그림이다. 제목은 '기차 의자'. '기차처럼 되어 있어서 힘이 센 사람이 줄을 당기시오'라고 친절한 설명까지 붙여 놨다. 이런, 너무 큰 기대를 심어줬나?

     

    뚜껑을 열어 보니 호연이가 디자인한 의자는 그래도 양반이었다. 지역의 아이들 10명을 모아놓고 원하는 의자를 그리라고 했더니 기상천외한 의자가 다 나왔다. 로켓이 발사되고 등받이에 방사능을 설치해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의자, 입에 핸드폰 충전기가 연결되어 있는 문어 의자, 발아래 책장이 있고 버튼을 누르면 원하는 책을 골라 주는 독서 의자 등등. 아이들의 상상력을 너무 얕잡아봤다.

     



    길자는 아이들의 손 그림을 캐드(CAD)로 옮겨 일일이 설계도를 만들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생활창작집단 '끌'(길자가 만든 단체다) 회원들과 함께 의자 제작 작업에 들어갔다. 끌 회원들은 목공예에 한 가닥 소질이 있는 분들이었다.

     

    길자가 각종 목공 도구들을 실어와 우리 집 마당을 공방으로 만들어 놨다. 나는 전동드릴을 이날 처음 잡아봤다. 의자 발에 바퀴 넣을 공간을 파기 위해 '끌'질도 처음 해봤다. 주말 하루 온종일 나무와 씨름했지만 의자 하나도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도대체 언제 의자 세 개를 만들어 기차처럼 연결하냐고!

     



    최대한 아이들의 디자인을 살려 11개의 '꿈꾸는 의자' 기본 틀을 제작하는 데만 한 달이 걸렸다. 다시 지역 아이들을 만나 하루 종일 꾸미기 작업을 했다. 아이들은 직접 페인트칠을 하고, 로켓(불꽃놀이용)과 방사능 장치(무늬만 그렸다)를 설치했다. 자신이 상상해서 그린 의자가 완성되어 가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한 아이들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작은 꿈이라도 그것이 실현되는 경험은 아이들이 커 가는 데 좋은 추억이 되리라 믿는다.

     

    3개월간의 과정을 거쳐 지난 4일 '일일카페'를 열어 '꿈꾸는 의자'를 전시했다. 아이들과 부모들, 꿈꾸는 공작단 프로젝트에 함께한 이들, 그리고 지역의 여러 단체 회원들이 참석했다. 아이들은 드디어 자신이 디자인한 의자를 집으로 가져갈 수 있다는 기대에 눈을 반짝였다. 아이들의 꿈이 이뤄지는 과정을 지역주민들과 공유했다. 이날 음료 판매와 즉석 경매를 통해 34만8000원의 성금을 모았다. 성금은 희귀병을 앓고 있는 지역의 한 학생에게 전달된다.




     

    "청년들에게 시골은 더 이상 심심하지 않다"

     

    독자들은 눈치 챘겠지만, <시골목수 도전기>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길자다. 길자가 목수고 나는 조수다. 이번에 함께 작업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길자는 귀촌하기 전에 한옥학교에서 4개월간 대목수양성과정을 이수하고 2년 동안 한옥공사 현장을 따라다녔다.

     

    나무 만지는 일이 좋아 전통창호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기도 했다. 몇 개월 전부터 마을을 찾아다니며 목공수업을 하고, 마을 주민들과 함께 나무그네, 평상, 농산물 판매대를 만들고 다닌다. 앞으로 이런 일을 전문으로 하는 '마을기업'을 세울 계획이라고 한다. 이제는 지역에서 어엿한 '길목수'로 불린다.

     

    "홍성으로 귀촌할 때만 해도 목공을 직업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어. 그냥 목공일이 좋았을 뿐이지. 이번에도 좋아하는 목공을 한 없이 했다는 게 좋아. 내 힘으로 첫 프로젝트를 기획해서 실행해 보는 것도 보람 있었고. 그렇다고 앞으로 목공만 할 생각도 없어. 시골 생활을 영상으로 담는 일도 즐겁고, 지역에서 다양한 문화사업을 기획하는 일도 재밌어. 알잖아? 시골에서 적당히 벌면서 재밌게 살자는 게 내 방식이라는 거."

     

    좋아하고 재밌어 하는 일을 다양한 직업으로 삼는 이 친가 부러웠다. 친구와 비교하는 것은 나쁜 습관이지만, 내가 좋아하면서 남들보다 아주 조금 잘 할 수 있는 일은 글쓰기 하나뿐이다. 사실 웬만한 실력 아니면 글쓰기만으로 두 아이 아빠로서 생계를 책임지지 못한다. 다재다능한 이 친구가 부럽다.




     

    "지역이나 시골에서 청년들이 할 것이 없다는데, 자기가 찾고 만들면 돼. 시골이라서 가능한 게 많아.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니까 심심한 거겠지. 시골, 농촌에도 얼마든지 재밌게 놀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어."

     

    그래, 내가 <오마이뉴스> 기사만 쓰고 있으니 가끔 심심할 수밖에. 네 말처럼 지역에서 글쓰기 문화프로그램도 기획해보고, 지역의 좋은 소재로 '스토리펀딩' 같은 것도 적극적으로 해봐야겠다. 그래도 난 목수는 체질이 아닌 것 같다. 앞으로 목공일은 조수나 할게. 대신, 만들기 좋아하는 우리 아이들이 원하는 거 가끔 부탁하마.

     

    3개월 동안 수고 많았어. 길목수. 앞으로 시골에서 함께 재밌게 살아보자.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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