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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굶주린 인민'은 옛말, 우리만 북한을 모른다
    다락방에서 바라본 세상 2016. 2. 5. 11:55


    <김진향 교수 강연 방청기> 행복한 평화, 너무 쉬운 통일

     

    서울에서 5년 정도 기자생활 할 때 담당분야는 통일, 외교, 국방이었습니다. 몇 년간 통일부도 출입했습니다. 평양, 개성, 금강산 등 방북 취재도 몇 차례 다녀왔습니다. 충남 홍성군으로 귀촌해 지역신문 기자가 된 이후 통일 문제는 담 쌓고 살았습니다. 지역에 천착하겠다는 것은 변명에 불과했고, 하루하루를 살아내느라 민족이나 국제관계 등 거시적인 담론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통일 문제는 자연스럽게 삶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지난 2일 홍성군에서 통일을 주제로 하는 강연이 열렸습니다. 솔직히 평일 저녁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고 싶었으나, 서울에서 취재하면서 알게 된 분이 주최한 행사라 인사치레 겸 강연회에 참석했습니다. ‘대전충남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이 주최한 강연회에 노무현,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와 개성공단에서 대북업무를 맡았던 김진향 한국과학기술원(KAIST) 미래전략연구원 연구교수(프로필 보기)가 강단에 서 있었습니다.

     

    20분 늦게 시작한 강연은 예정 시간보다 1시간 늦게까지 이어졌습니다. 강연이 진행되는 동안 시계 한번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새홍성교회의 작은 강의실을 가득 메운 40여 명의 지역 주민들도 대부분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습니다. 3시간여 동안 진행된 김 교수의 강연에 청중들이 몰입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북맹의 근본 원인은 적대적 분단체제”

     


    김 교수는 “우리가 과연 북한을 알까요?”라는 질문으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5년간 청와대에 있으면서 우리(정부)가 북한을 너무 모른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북맹’이라고 했습니다. 청와대 남북관계 국장 시절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로 통일부, 국정원 등 여러 부처 관계자와 함께 김정일 국방위원장 가계도를 작성해 보고하면서 ‘김정은’의 이름조차 제대로 기재하지 못했다는 일화도 소개했습니다. (‘김정운’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가, 2009년 북한 공식 문서를 통해 확인된 바 있습니다.)

     

    ‘적대적 분단체제’가 북맹 현상의 근본적인 이유라고 김 교수는 지적했습니다. 그나마 참여정부는 남북화해협력 기조를 유지했습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로 넘어오면서 북한에 대한 정보는 더욱 왜곡됩니다. 사회과학적 해석이 아니라 정치적 해석만 존재하며,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하는 이상 정부는 남북관계의 진실을 알려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적대적 분단체제가 심화될수록 북한의 실체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거짓이 일상화된 체제입니다. 남북관계에서 사실과 진실은 사치입니다. 국익관점에서 진실은 부정됩니다. 국가가 북한을 제대로 알려준다? 그것은 신화입니다.”

     

    변화하는 북한...우리만 모른다

     


    김 교수는 북한의 최근 사진을 몇 장 보여줬습니다. 북한이 선전용으로 배포한 사진이 아닌, 외국인들이 북한을 관광하면서 직접 찍어 SNS에 올린 사진들이었습니다. 외국인들은 북한 군인과 다정스럽게 어깨를 맞대고, 만수대 동상 앞에서 익살스럽게 강남스타일 춤을 춥니다. 대동강 주변으로 고층의 빌딩과 아파트가 들어섰고 나들이 나온 평양 주민들은 외국인의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듭니다. 제가 2008년 7월 평양을 취재했을 때 거리에서 사진기를 들이댈 때마다 북측 안내원들이 제지했던 분위기와 사뭇 달랐습니다(당시 평양에서 돌아오기 전날 밤 금강산에서 관광객 피격 사건이 터졌고, 남북관계의 문은 닫히고 말았습니다).

     

    북한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여전히 대규모 기아 사태가 벌어진 1990년대에 머물러 있다고 김 교수는 지적했습니다. 요즘에도 방송에서는 북한을 보도할 때 여전히 굶주리고 헐벗은 주민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김 교수는 “네이버, 다음도 마찬가지이니, 구글이나 유튜브에서 검색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검색해봤습니다. 구글에서 ‘최근 북한 사진’이라고 치니, 여전히 헐벗은 모습의 자료사진들이 먼저 뜹니다. 영어로 ‘recent north korea’라고 쳤더니, 여전히 한글과 연동돼 똑같은 노출 결과가 나옵니다. 다시 ‘north korea tour’로 검색하니 드디어 외국인들의 ‘직찍 사진’들이 뜨더군요. 김 교수는 “북한은 와서 보고 변화를 눈으로 확인하라고 한다”며 “정작 우리는 북한에게 개혁개방을 하라고 요구하면서 적대국인 미국인들도 자유롭게 방문하는 북한을 가지 못하는 역설적인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2013년부터 북한 경제상황 호전”

     

    박근혜 정부가 북한붕괴론에 기댄 ‘통일대박’을 외치는 동안 북한에서는 과연 무슨 변화가 있었던 걸까요? 김 교수는 몇 가지 데이터를 소개했습니다. FAO(국제연합식량기구)와 WFP(유엔세계식량계획)등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북한의 식량생산량이 해마다 늘어 2014년 식량생산량은 최소소요량을 31만톤 초과했습니다. 자급자족이 가능해졌고 더 이상 굶주리는 상황은 아니라는 겁니다(지난해는 가뭄으로 식량생산량이 다소 줄었다는 보도가 있습니다만 부족분에 대한 식량 수입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 따르면 2013년 북한의 대외무역규모 성장률은 7.8%로 1990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성장률이 이어질지 여부는 지켜봐야할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북한’하면 떠올리는 ‘극심한 가난’의 이미지는 20년 전의 선입견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미디어에 크게 주목받지 못하지요. 정부가 북한붕괴론을 내세우고 있는 이상 북한은 굶주린 모습이어야 하고, 체제는 불안해야 합니다. 앞서 언급한 김 교수의 말대로 “남북관계에서 사실은 사치”이며 “국익관점에서 진실은 부정”됩니다.

     

    이러한 경제상황 호전은 북한이 핵을 보유하면서 미국과의 군비경쟁에서 다소 여유를 갖게 되자 군수가 민수로 이양됐기 때문이라고 김 교수는 분석했습니다. 북한이 줄곧 요구하고 있는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이 이뤄지면 경제발전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최근 북한의 수소탄 핵실험과 2월 중 예고된 인공위성 발사 역시, 미국과의 국교정상화를 위한 압박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김 교수도 올해 대선을 앞둔 오바마 정부가 어떤 판단을 내릴 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통일은 국민 행복의 문제”

     


    북한의 최근 현황에 대한 내용은 이날 강연의 핵심 주제가 아니었습니다. 김 교수 강연 주제는 ‘행복한 평화, 너무 쉬운 통일’이었습니다. 국민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분단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서로 다른 체제와 문화양식에 대한 ‘상호존중’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상호존중은 상대방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는 것. 그것이 ‘너무 쉬운 통일’의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분단체제의 심화는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권위주의 독재를 심화시켜왔습니다. 자본주의와 더불어 분단체제는 인간성과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통일은 우리 사회가 제대로 서고, 국민들이 행복해지기 위한 일입니다.”

     

    “갑작스런 통일은 국민 불행의 근본입니다. 북한 체제는 너무나 강고하기 때문에 통일은 갑작스레 오지도 않고, 와서도 안 됩니다. 흡수통일, 통일비용론은 분단을 고착시키는 반통일론입니다. 통일은 오랜 기간 동안 평화를 위한 제도를 만드는 과정 끝에 오는 것입니다.”

     

    “개성공단에서 4년 동안 있으면서, 남북경협은 제2한강의 기적, 대동강의 기적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민족의 경제대변영은 품격 높은 사회로 이어질 것입니다.”

     

    우리 아들의 소원은 ‘통일’

     

    글이 길어졌지만 올해 아홉 살이 된 첫째 아이 이야기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새해 초 아이와 함께 홍성에 있는 용봉산에 올랐습니다. 돌탑을 보더니 아이가 “저기에 돌을 올리고 소원을 빌면 정말 이루어지냐”고 물었습니다. 그렇다고 했더니 작은 돌을 올리고 두 손을 모아 소원을 빕니다.

     

    ‘원하는 장난감을 갖게 해달라고 했겠지’ 생각하면서 무슨 소원을 빌었냐고 물었더니 비밀이랍니다. 그날 밤 베개맡에서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시 물었더니 ‘통일되게 해 달라’고 했다고 속삭입니다. 학교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주입식 교육이라도 했나 싶어 이유를 물었더니 “난 군대 가기 너무 싫은데, 아빠가 통일 되면 군대 안가도 된다고 했잖아”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얼마 전 입대하는 사촌형에게 군대이야기를 들었나 봅니다. 그 때부터 첫째아이는 ‘어떻게 하면 군대를 안 갈 수 있어?’, ‘전쟁이 안 일어나면 훈련만 하다가 돌아오는 거야?’라고 자주 묻곤 했습니다. 제가 즐겨보는 TV프로그램 ‘진짜사나이’도 첫째 아이는 보기 싫답니다. 아홉 살 아이에게 군대와 전쟁은 정말 피하고 싶은 공포였습니다.

     

    남북회담을 취재하고 통일부를 출입할 때 통일은 내 직업의 영역이었지만 귀촌생활에서 통일은 단지 서울에 남겨두고 온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분단과 통일 문제는 매순간 나와 아이들, 내 가족의 삶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어린 아이들도 걱정하듯 전쟁은 모든 사람의 삶을 집어 삼킵니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 위해 전쟁을 치르는 어른들은 진짜 전쟁에 둔감해졌는지도 모릅니다.

     

    내 아이가 살아갈 미래를 다시 생각해봅니다. 의무적으로 군대에 가서 총을 들지 않아도 되는 사회, 홍성역에서 기차를 타고 서해선, 경의선을 넘어 유라시아까지 이어지는 반도국가의 건강한 상상력이 펼쳐지는 사회. 그렇게 되면 먹고 살기 위한 이 지긋지긋한 전쟁도 다소 누그러지지 않을까요?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 어른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 김진향  교수 프로필 보기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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