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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애가 농업을 만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다락방에서 바라본 세상 2016. 4. 10. 21:09


    <참관기>장애와 농업 심포지엄, 직업으로서 농업의 가능성 찾기

     

    “제가 학교를 다닐 때는 특수학급이 따로 없었어요. 그래서 한 반에 장애를 가진 친구들이 한두 명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사회에 나가니까 보이지 않아요. 그 때 있었던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공교육 안에서는 그래도 울타리가 있었는데, ‘사회가 알아서 필터링을 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애와 농업’이라는 주제로 한 심포지엄에서 나온 말이다. 특수교사, 보호작업장, 직업재활센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장애인을 돕는 현장 활동가들과 장애인, 그리고 그들의 부모가 참석한 자리였다. 장애와 직접 관련된 활동을 하지 않은 사람도 몇몇 참석했다. 자원봉사로 심포지엄 기록을 맡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평소에 장애인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 친척이나 친구 등 주변에 장애를 겪는 사람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이 분야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못했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숨어 있다. 아니, ‘사회 필터링’에 의해 숨겨져 있다.

     

     


    ‘학교를 함께 다녔던 장애를 가진 친구들은 왜 사회에서는 보이지 않을까?’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한 열쇳말은 ‘직업’이다. 장애인이 직업을 갖고 사회의 일원이 되기에는 문턱이 너무 높다. 학교를 졸업한 후 성인이 된 장애인들은 집 현관문을 넘어 갈 곳을 찾기 힘들다.

     

    또 하나의 열쇳말은 ‘농업’이다. 심포지엄이 열린 장소에는 ‘장애인이 농업을 만나면 직업으로서 성취감을 느끼며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 깔려 있었다.

     

    농업에서 찾은 다섯 가지 치유법

     

    ‘장애와 농업 심포지엄’은 지난 2일 충남 홍성군 홍동면에 있는 홍동중학교 해누리관에서 열렸다. 홍동에서 발달장애청소년을 위한 교육농장을 운영하는 ‘꿈이자라는뜰’이 이번 심포지엄을 준비했다.

     

    작은 농촌마을에서 열린 심포지엄이었지만 서울, 대전, 금산, 서천, 목포, 군산, 과천, 공주 등 전국 곳곳에서 사람들이 찾아왔다. ‘농업이 장애인들의 직업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서로 진지하게 묻고 답했다. 이번 심포지엄은 2014년 진행됐던 ‘장애와 농업 다리놓기’ 공부모임의 연장선에 있다.


     

     

    홍성에서 특수학급 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꿈자람 진로직업교육연구회’ 이민형 씨가 먼저 장애와 농업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 그는 오랫동안 장애 학생들과 텃밭을 가꾸면서, 농사를 짓는 일은 ‘환대’, ‘자각’, ‘현존’, ‘전념’, ‘이완’ 등 심리치료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이 다섯 가지 개념은 최신 심리치료기법인 ‘수용전념치료’의 다섯 가지 핵심개념과 연결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학교 정원에 심은 꽃은 매일 아침 나를 반겨주고(환대), 흙을 손으로 만지거나 땅을 파다 만난 굼벵이, 개구리와 같은 생물을 만지며 새로운 느낌을 얻고(자각),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잡초를 뽑거나 자그만 상추씨를 고랑을 따라 뿌리는 데에만 집중하는 순간이 찾아오며(현존), 답답한 교실에만 갇혀 있다가 텃밭에 나온 아이들은 몰입할 놀이거리를 찾고(전념), 한참 땅을 파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기’를 하거나 텃밭에서 고된 일을 한 날 밤 곯아떨어지는(이완) 경험이 심리치료와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장애와 농업을 어떻게 결합할까 고민하면서, 소출이 많지 않더라도 농업을 통해서 삶이 풍요로워지고 치유될 수 있을 지를 연구했습니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농업을 통해 삶이 풍요로워 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농업, 치유를 넘어 직업이 될 수 있을까?

     

    참석자들은 농사를 짓는 일이 장애인에게 심리치료 효과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 공감했다. 흙을 파고, 식물을 기르는 것을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장애인들이 많다고 참석자들은 입을 모았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장애인들이 농사를 지으며 먹고 살 수 있을까’라는 현실적인 질문이 던져졌다. 이야기의 장도 자연스럽게 ‘학교’에서 ‘직장’으로 옮겨갔다.

     

    홍성군 장곡면의 ‘행복농장’이 두 번째 사례로 발표됐다. 충남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 지원을 받아 2014년 만성정신질환을 겪은 성인 환자들의 치유와 자립을 목적으로 시작된 ‘행복농장’은 올해 2월 협동조합으로 법인 등록했다.

     

    하우스 4동에서 장애가 있는 회원들과 함께 허브, 방울토마토, 멜론, 쌈채소 등을 유기농업을 재배하고 하며 각종 장애인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자연구시’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정신장애를 겪는 성인들에 대한 직업재활 및 사회복귀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4박 5일간 ‘자연구시’ 기초과정을 세 차례 경험한 장애인 중 4명이 심화과정으로 3주간 행복농장에서 일을 했다. 이중 2명이 한 달간 장애인고용공단 인턴 지원을 받아(농장 인건비 일부 부담) 한 달간 근무했다. 1명은 증세가 악화돼 병원에 입원했고, 현재 1명이 몇 개월째 행복농장을 운영하는 비장애인 직원 2명과 함께 일을 하고 있다. 비로소 1명의 장애인이 농업을 직업으로 얻게 된 것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농사를 지으면서 의미 있는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제대로 된 소득을 얻지는 못하고 있다. ‘농장을 운영하는 직원들의 인건비는 어떻게 확보하나’라는 질문에 대해 행복농장 최루시 대표일꾼은 “인건비는 여전히 숙제”라고 답했다.

     

    “(비장애) 직원들의 인건비 지원은 받지 않습니다. 농장에서 (장애인과 함께) 생산한 농산물을 판매해서 인건비를 확보해야 하는데, 아직 인건비라고 할 수준이 못됩니다. 지난겨울에 하우스가 무너져 심은 작물을 팔지도 못했습니다. 좋아서 이 일을 하고 있지만 먹고는 살아야죠. 열심히 버티고 있습니다.”

     

    사회적 지원으로 지속가능성 확보해야

     

    먹거리를 생산하는 것이 농업이지만, 농사만 지어서 한 가족이 밥 벌어 먹기도 힘든 것이 현실이다. 비장애인보다 생산성이 낮을 수밖에 없는 장애인들이 농업으로 먹고 사는 것이 가능할까?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농업에 치유 기능이 있다면, 장애인들이 농사를 지으며 나름의 생산에 참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사회복지법인 ‘민들레처럼’은 또 다른 형태의 사례다. 일단 사회복지법인은 설립하기는 까다롭지만, 모든 경비를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협동조합과 다르게 운영비와 인건비를 정부로부터 지원받는다. ‘민들레처럼’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임경원 공주대 특수교육과 교수의 말을 빌리면 “튼튼한 베이스캠프”다.

     

    지난해 2월 사회복지법인 인가를 받은 ‘민들레처럼’은 지난 연말 장애인들이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었다. 30평 규모의 시설에서 10명의 장애인이 ‘당찬견과’라는 브랜드의 견과제품을 생산한다. 밭에서 직접 농산물을 수확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수확된 농산물을 분류, 포장한다. 지난달 매출액이 1000만 원을 넘어섰다고 임 교수는 전했다. 올해 시설을 확충하고 근무인력도 확대할 계획이다.

     

    “농업은 텃밭을 가꾸는 소꿉장난이 아닙니다. 그나마 학령기 때는 괜찮습니다. 사회에서 밥벌이가 될 수 있을 지가 중요합니다. 생산이 소득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좋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실패하면서 열정을 소진시키지 않았으면 합니다. 가장 안전한 기지가 필요하다는 심정으로 사회복지법인을 만들었습니다. ‘민들레처럼’이 기지가 되어 전국에 홀씨를 뿌리려고 합니다. 일터가 출발점이지만 공동체 마을, 학교 여러 가지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민들레처럼’은 각 지역의 장애 관련 조직 간 네트워크를 만들 계획이다. 임 교수는 장애와 농업 사이에 다리를 놓기 위해 노력하는 여러 단체들이 여기에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직업이 아니라도 ‘공동체’라면 행복해

     

    이날 심포지엄을 개최한 ‘꿈이자라는뜰(이하 꿈뜰)’은 마을주민들과 함께 장애가 있는 청소년을 돌본다. 지난해 발달장애청소년 12명과 주민교사, 특수교사 12명이 매주 만나 함께 농사짓고, 어울려 놀기도 하고 목공, 풍물수업을 했다.

     

    2명의 비장애인 일꾼과 1명의 장애인 일꾼이 꿈뜰에서 급여를 받으며 일을 한다. 발달장애청소년 교육뿐만 아니라 꽃과 채소 모종을 재배해 마을장터에 팔고, 허브를 키워서 허브차를, 메리골드를 키워서 꽃물 들인 손수건도 팔았다. 감자, 수수, 메주콩, 생강 농사도 지어 마을 생협 등을 통해 판매한다. 책자 겸 다이어리 형태인 ‘텃밭일지 농사달력’은 개정판을 거쳐 2014년부터 매년 발행하고 있다.

     

    꿈뜰 일꾼 최문철 씨는 심포지엄 소개자료에 이렇게 썼다.

     

    “꿈뜰은 발달장애 청소년들이 농사일을 통해 건강한 일꾼으로 성장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이 마을이라는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배우고, 익히고, 관계 맺고, 자기 자리를 찾아, 제 몫의 일을 하며,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을 꿈꿉니다. 우리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돕고 배우며 어울려 살아가는 마을을 만들고 싶습니다.”

     

     

    홍동에 있는 풀무학교전공부를 졸업하고 지난해부터 꿈뜰에서 일하고 있는 임이담 씨는 장애 학생들과 마을 주민들이 함께 노래하고 즐겼던 ‘정원음악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마을음악회를 만들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어요.(이담 씨는 노래를 좋아한다. 그래서 마을에서 불리는 별칭도 ‘노래’다.) 가이(꿈뜰에서 일하는 장애인 일꾼)와 제가 사회를 봤어요. 꿈뜰 농장에서 학생들이 주인공이 되고 마을 분들이 함께 노래하며 공연을 했어요.”

     

    “우리 마을에서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살 수 있을까? 꿈뜰에서 일하면서 이런 고민을 해요. 마을 단체나 일터마다 장애인이 일할 수 있도록 영역을 만들고, 돌봄이 일터마다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이런 바람을 가지고 있어요.”

     

    돈에 구애받지 않고 즐겁게 일하기

     

    점심을 함께 먹은 다음 오후에는 서울 성미산학교 사례발표와 참석자들의 소감 발표가 이어졌다.

     

    성미산 학교는 노리라는 별칭을 쓰는 서울 성미산학교 특수교사는 평창에서 1년간 농촌에서 학생들과 농사지으며 함께 지냈던 경험, 서울시 외곽에 버려진 땅을 텃밭을 일구던 경험을 소개하며 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지켜봤다고 전했다. 하지만 학교를 넘어선 직업에 대한 고민에서 답을 찾지 못했다. 



    “농사라는 것이 어떤 목표를 가지고 어디에 갖다 붙여도 좋은 교육방법이더라고요. 가장 큰 고민은 ‘이것을 어떻게 진로랑 연결시킬 수 있을까’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는 수확을 크게 하지 않아도 괜찮고, 안전한 환경에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하기 좋지만, 졸업 후에 어떻게 진로와 연결돼 자립할 수 있을까요?”

     

    소감 발표 자리에서도 학교를 졸업한 장애 학생이 계속 농사를 지으며 사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지에 대한 논의로 수렴됐다. ‘농업을 통해 장애인들의 자립을 돕는 조직에 대한 지원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과 함께 ‘장애인의 생산성 향상과 수익에만 초점을 맞추는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외국은 우리처럼 ‘얼마 이상 벌어라’는 시스템은 아니더군요. 많이 벌던, 안 벌던 중요하지 않고 자연 속에서 즐겁게 일하는 일환으로 농업을 말하는데, 이것을 경제적으로 연결하기는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에 (장애인들과 함께) 염소와 닭도 키우고 고추, 배추도 재배하면서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일정 수준 이상의 월급을 주기에는 농업은 전혀 맞지 않았어요. 이제는 (장애인들이) 치약과 칫솔을 만듭니다. 단순노동이죠. 그 때보다 훨씬 더 벌지만, 그 친구들이 즐겁지 않아요. 돈에 구애받지 않고 장애인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보호작업장(장애인 일터)을 꿈꾸는데 현실적 제약이 많습니다.”

     

    ‘마을텃밭 정원사’로 행복을 줄 수 있다면

     

    시장주의경제에서 경쟁을 통해 수익을 내기에는 농업이라는 시장가치와 장애인의 생산성은 너무 낮다. 심포지엄 참가자들의 발언을 일일이 기록하면서 마을이라는 공동체 속에서 장애인들이 나름의 역할을 찾는다면 그것이 직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령 '마을텃밭 정원사' 같은 직업 말이다.

     

    꿈뜰의 농장은 마을정원처럼 예쁘다. 장애 학생들이 정성들여 가꾼 텃밭이 한 해 동안 변하는 모습을 담은 짧은 영상(이날 심포지엄에서 상영됐다)도 아름다웠다. 꿈뜰 일꾼 최문철 씨는 공동체토지신탁으로 마을 공동의 토지를 마련하고, 그곳에서 장애인들이 마을 텃밭정원을 가꾸는 상상을 현실에 옮길 준비를 하고 있다.

     

     

    “공동체토지신탁으로 여러 사람이 돈을 모아 땅을 사서 마을정원처럼 공공자원으로 활용하자는 겁니다. 거기서 (장애를 가진) 우리 아이들이 일을 하겠죠. 누군가는 그곳으로 소풍 와서 점심도 먹고 하면 이 공간이 더 빛나지 않을까요? 언젠가 꿈뜰의 역할이 끝나면 마을의 공공자산으로 남기는 방식으로 설득하고 싶어요.”

     

    이번 심포지엄을 준비한 최 씨는 이날 ‘기록농사’를 강조하기도 했다. 장애인들이 농사를 지으며 느낀 즐거운 감정을 스스로 글과 그림으로 기록하는 일은 소중한 경험을 강화한다고 설명했다. 기록의 효용성은 장애인에게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그는 “장애와 농업에 대한 아카이브 잡지를 만들어 한 해 한 해 기록을 쌓아가자”고 제안하며 “이 길을 새로 시작하는 분들에게 의미 있는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장애와 농업이라는 생소한 분야에서 각자가 겪은 시행착오를 서로 나누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어 보였다. 다소 길게 작성한 이 글 역시, 그들의 소중한 경험을 강화하기 위한 ‘기록농사’의 일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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