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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럽 길거리 사물놀이 공연 1>젊음. 그 ‘도전’이라는 이름으로.
    떠나기 2016. 4. 19. 11:09


     2003년 6월부터 7월, 한달간 유럽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것도 사물놀이 악기를 들고 유럽 각국의 거리를 누볐습니다. 그때 내나이 스물 셋. 군을 제대한 지 얼마 안된 겁없는 나이였습니다. 당시 기록해 두었던 여행기를 한편씩 올립니다. 


    미세한 진동을 일으키며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거대한 제 몸이 버겁기라도 한 듯이 나를 태운 비행기는 좀처럼 속력을 내지 못한다. 아직 이 땅에 미련이 있는 것처럼 지겹게 땅 위를 기어다니던 비행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굉음을 내며 긴 활주로를 직선을 그리며 무서운 속력으로 내달린다. 그러고는 있는 힘껏 육지를 밀어낸다. 그 순간, 육지의 중력은 내 몸뚱아리를 잡아당겼지만, 나도 있는 힘껏 저항했다. 나를 23년 동안이나 묶어두었던 저 곳.


    그 곳을 떠난다는 것. 그 동안 복잡하게 얽힌 내 삶의 타래를 잠시 끊어두는 것. 그리고 다른 줄을 이어가 보는 것. 아마 다시 이 곳으로 돌아왔을 때, 예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 그 얽힌 실타래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창문은 영종도의 끝자락을 따라 가더니 작은 섬들이 띄엄 띄엄 떠있는 서해바다를 비춘다. 그렇게 동쪽을 얼마나 갔을까? 창문 너머는 온통 하얀 구름바다다. 구름은 저들끼리 하얀 물결을 만들었다가 우뚝 솟은 섬을 이루기도 한다. 육지에 두 발을 딛고 서서는 상상하지도 못할 그런 광경을 보면서 이제 비로소 떠나왔음을 가슴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창문 너머로 넋없이 바라보고 있으니, 오늘을 위해 준비했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친다. 그러고 보면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우리의 꿈을 방해하던 일들이 참 많았다. 함께 준비해 오다가 개인적인 일들로 한 사람씩 떨어져 나가기도 했었고, 그래도 힘내서 준비했더니 이라크 전쟁이 일어나서 우리를 가로막았다. 그리고 이제는 사스까지 우리의 꿈을 방해하고 나섰다. 오늘 아침까지는 유로화가 사상 최고치로 뛰더니, 그렇지 않아도 빈약한 우리의 주머니를 쪼그라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것에 굴하지 않고 지금 이 비행기는 그동안 우리가 만들어 온 꿈을 싣고 구름 위를 날고 있다는 것이다.


     구름 위를 한참동안 날던 비행기가 구름을 뚫고 하강하더니, 잘 정리된 논들 가운데 있는 일본 동경 나리타 공항이 시야에 들어온다. 갑작스런 하강에 크게 한 숨을 내쉬고 마음을 다 잡는다.


     ‘그래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런데 얼마전까지만 해도 믿음직스럽던 비행기가 우리를 낯선 곳에 툭 던져 놓자, 우리는 갑자기 방향감각을 잃은 듯, 우왕좌왕하기 시작한다.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내 가슴을 엄습해온다. 그래도 친절한 일본 공항 안내원들 덕분에 입국수속을 마치고, 자기 짐을 찾으면서 긴장이 가득한 얼굴을 서로 쳐다보며 안도의 미소를 살짝 지어본다.


     그 여유도 잠시,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내가 너무 긴장한 나머지 입국수속을 하다가 징을 놓아둔 채 그냥 오고 만 것이다. 징이 없으면 우리의 풍물공연이라는 꿈이 나 때문에 무산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든다. 나는 너무 미안한 마음에 혼자서 다시 공항안으로 무작정 뛰어 들어갔다. 갑자기 들어온 나를 제지하던 공항 안내원들을 보고 흥분한 내 입에서는 영어 몇마디를 더듬다가 결국 한국말이 튀어 나왔다.

    “저기 둔것 같은데 잃어 버렸어요"


    당황하는 건 그 쪽도 마찬가지인지, 일단 분실물 센터로 가보란다. 나는 조금 진정시키고 센터로 가서 영어로 겨우 한마디 꺼낸다.


    우여곡절 끝에 징을 찾아서 동료들에게 돌아온 나의 등은 식은 땀으로 흥건했다. 

    그때부터 이번 여행이 내게 너무 벅찬게 아닐까하는 걱정이 일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출국하기 몇일 전부터 안절부절 못하고, 신경쓸게 너무 많다보니 계속해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중요한 일을 하나씩 잊곤 했다. 얼굴에 ‘의기소침'이라고 쓰고는 어떻게 해서 일본항공에서 제공하는 호텔까지는 찾아왔다. 마음을 잡아보려고 짐도 정리하고 바쁘게 움직여 보지만, 도무지 안정을 찾을 수 없다.


    동진이가 잠깐 씻는 사이에 침대에 누워 생각에 잠겼다. 그동안 준비했던 순간들, 도와주고 지켜봐 주신 분들의 얼굴 그리고 이륙하면서 비행기속에서 느꼈던 그 벅찬 느낌들.


    ‘이 만한 일에 기가 죽어서는 안된다. 앞으로는 더 큰 일이 닥칠지도 모른다. 그래! 한번 부딪히고 보는 거다. 깨지고 넘어지면 다시 부딪히는 거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한결 나아졌다. 호텔카운터에서도 편의점에서도 처음 말걸어 보는 일본인에게 자신있게 나를 내세울수 있었다. 그리고 모두들 모여서 간식도 먹으면서 하루를 마감하며 기분좋게 수다도 떨었다.


    하루가 참 길게 느껴진다. 앞으로는 이보다 더 긴 하루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동경의 밤은 깊어가지만 새로운 세계에서 부딪히며 조금씩 부풀어 오르는 자신감에 잠이 오지 않을 것 같다. 다시 이 자신감이 쪼그라들지 않도록, 여행속에서의 나의 펌프질은 계속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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