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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럽 길거리 사물놀이 공연 2>파리 시위대와 한판 굿을 벌이다
    떠나기 2016. 4. 19. 11:12


     2003년 6월부터 7월, 한달간 유럽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것도 사물놀이 악기를 들고 유럽 각국의 거리를 누볐습니다. 그때 내나이 스물 셋. 군을 제대한 지 얼마 안된 겁없는 나이였습니다. 당시 기록해 두었던 여행기를 한편씩 올립니다.


    여행은 우리를 한 시라도 가만히 놔 두질 않는다. 여행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듯이, 언제 어디에서 돌발할지 모르는 일들이 우리 앞에 닥치게 마련이다. 우리는 여행이 내어주는 숙제와 시험들을 거치면서 조금씩 배워가고 커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런 성장의 희열때문에 고생을 감수해가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게 아닐까?


    우리가 도착한 파리는 파업중이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가 도착한 그 날 총파업에 들어갔다. 그래서 버스도 지하철도 거의 모두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처음 시작하는 여행지부터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겨서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여행의 재미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파업 이틀째부터는 지하철이 간간히 다녔다. 덕분에 우리는 파리사람들과 몸을 부대끼며 사람들로 꽉 찬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전화위복이라고 파업중의 교통수단은 공짜였다. 그런데 계속되는 파업에도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나, 비좁은 지하철에 몸이 끼인 파리사람들의 표정에는 짜증이 없다. 다만, 서로에게 미안할 뿐인 것 같았다. 잦은 파업에 대한 무감각일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그렇게 파업을 자주할 수 있는 것은 파리사람들이 파업을 인정하기 때문인 듯 싶다. 


    우리나라였으면 아마도 총파업에 들어가기 전부터 먼저 언론에서 ‘시민들의 발을 담보로 자신들의 이익을 챙긴다'고 떠들면서 온 국민을 자신의 이익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로 몰았을 것이다. 그렇게 이기주의자가 된 사람들은 자신의 불편함때문에 다른 사람은 기본적인 부분에서 불이익을 당하게 되고, 총파업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정당한 요구는 좌절되고 만다. 하지만 이렇게 총파업에 들어간 파리는 어떠한 혼란도 없어 보인다.


    파리의 거리는 이상할 만큼이나 조용하다. 시끌벅적해야 할 관광지에도 아무리 사람이 많더라도 여유롭고 평화스러워 보인다. 여기에 오기 전까지 내 머릿속에 파리는 모든 거리가 예술인으로 가득차고, 예술을 즐기는 사람으로 활기찬 도시였는데, 그 모습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조용히 분수 옆에서 책을 읽고, 아니면 학교에서 그룹으로 야외수업을 하고 있거나, 쉬고 있는 사람들만이 여유로운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그런 도시의 분위기에서 우리의 풍물공연을 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나 않을까 하면서, 공연에 대한 두려움만 커져갔다. 프랑스 사람들의 열정은 도대체 어디로 다 증발해 버린 걸까?


    다행히 지난 번 공연에서 만난 ‘아니타'라는 예술가가 공연장소가 마땅히 없는 우리에게 공연장소를 마련해 주었다. 파리 시내 중심가에 희한하게 생긴 허름한 건물인데, 구경온 사람들이 우리의 공연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처음 들어선 우리는 사람들이 오기전까지 민복을 갖춰 입고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조용하던 파리시내가 갑자기 음악소리와 함게 시끌벅적해졌다. 창문을 내다보니, 갖가지 캐릭터로 변장한 사람들과 여러가지 모양으로 장식한 차들이 도로를 메우고 지나간다. 우리는 처음에 축제행렬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것은 대학생들의 시위대였다. 그러고 보니 경찰들이 간간히 보인다. 우린 그대로 치고 있던 악기를 메고 건물 밖으로 뛰쳐나갔다.


    시위대를 놓칠 세라 뛰고 또 뛰어서 그들의 대열에 합류했다. 화려하게 장식한 트럭위에 밴드들이 노래를 부르고, 또 다른 트럭위에는 신나는 음악에 맞춰 모두들 춤을 추며 뛰는 모습들이 시위대가 아니라 그냥 축제를 즐기는 젊은이들의 모습이다.


    “ Can I join with you?"


    민복을 입은 모습으로 대뜸 이렇게 물으니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렇게 하란다. 처음에는 조금 떨리기는 했지만 우리도 그들과 함께 즐기고 싶었다.



    파리도로 위를 우리의 사물을 두드리며 한껏 흥을 돋우웠다. 그런데 우리의 이런 모습에 시위대들은 처음에는 보기만 하다가 우리와 함께 덩실덩실 뛰어 논다. 우리에게 엄지 손가락을 내밀며 대단하다며 감탄하기도 하고, 호기심에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가 한판 멋드러지게 치고 마칠 때 마다 터져나오는 환호는 내 생애 가장 벅찬 소리였다.


    이렇게 문화가 다른 이들에게도 처음 접하는 데도 크게 와 닿을 만큼 우리의 소리가 정말 대단하다는 자긍심이 들었다. 우리도 역시 그들의 음악에 흥을 맞취 춤을 추기도 했다. 그렇게 시위대를 따라 거의 한 시간 동안이나 거리를 휘집고 다니면서 지금껏 풍물을 치지 못했던 한을 다 풀어버렸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파업을 즐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서로 조금씩은 불편하겠지만, 파업을 이유삼아 일손을 놓고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함께 즐길 수 있으면 축제나 다름없을 것 같다. 이렇게 즐기고 돌아오는 길에 민복을 입은 우리를 알아보고 인사까지 하는 사람도 있다. 뛰어다니던 거리는 이제 낯선 이국땅이 아니라 우리 동네 처럼 친근하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파리의 열정에 과연 파리이구나 싶다. 우리가 받은 좋은 느낌을 우리나라에 고이 가져가고 싶다. 오늘 프랑스 젊은이들이 우리의 소리, 음악을 듣고 가지게 된 느낌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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