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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럽 길거리 사물놀이 공연기 4>파리를 떠나 암스테르담으로
    떠나기 2016. 4. 19. 11:22


     2003년 6월부터 7월, 한달간 유럽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것도 사물놀이 악기를 들고 유럽 각국의 거리를 누볐습니다. 그때 내나이 스물 셋. 군을 제대한 지 얼마 안된 겁없는 나이였습니다. 당시 기록해 두었던 여행기를 한편씩 올립니다. 


    23시 16분. 네델란드 암스텔담으로 떠나는 야간열차를 타기 위해 들어선 파리 북역은 제각기 어디론가 떠나고 돌아오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우리는 그 낯설음때문에 한참동안이나 모퉁이에서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지금까지 한국인 민박을 하는 동안은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어려움없이 파리 여행을 했지만, 이제는 모든 것을 우리 스스로 찾고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갑자기 멍해져 온다. 무엇을 먼저 해야할 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가,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생각에 부딪혀 보기로 했다. 두명은 짐을 지키고 효경이누나와 나는 역을 이리저리 헤매고 다녔다. 그렇게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고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면서 마침내 열차패스를 개시할 수 있었다. 항상 그렇듯이 해내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에 지레 겁먹었던 내 모습에 헛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이렇게 내 앞에 주어진 과제를 하나씩 풀어나가는 것은 여행의 큰 재미다.



    어수선하게 짐을 챙기고 쿠셋이라는 침대칸에 모두 몸을 누이고 나니 첫 야간이동의 긴장감때문에 만끽하지 못했던 아쉬움이 조금씩 밀려온다. 파리에서의 일주일. 처음에는 낯설게만 느껴졌던 파리를 떠나려고 하니 파리의 모든것이 벌써 그리워지기 시작한다. 풍물을 치며 휘집고 다니며 익숙해진 파리의 거리. 어디서나 웃는 얼굴로 우리에게 친절을 베풀어준 파리 사람들. 그들은 우리에게 아무런 경계심 없이 대해주었고, 오히려 외국인이기에 더욱 친절했다. 물론 남의 나라 문화재를 훔쳤던 그들의 부끄러운 제국주의 역사가 아직 박물관에 남아 있었지만, 그것은 소수 지배층들의 욕심이자, 과오라고 믿고 싶다. 파리의 보통 사람은 우리나라의 보통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고, 더 정이 많았다. 이런 좋았던 인연을 뒤로하고 떠나야 한다는게 아쉬울 뿐이다. 하지만 여행이란 그리움과 아쉬움만 가슴에 담고 다른것은 놓아두고 떠나야 하는 것. 그래야 새로운 무언가를 담을 수 있는 법이다.


    파리에서의 편안하고 행복했던 시간때문인지, 이제야 집을 나와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다. 이제부터 열차패스가 유효한 15일간은 지금처럼 좁고 불편한 기차를 타고 여러나라를 열심히 다녀야 한다. 앞으로의 여행, 지금처럼 편하지는 않을 것 같다. 처음의 마음가짐으로 힘들고 고생할 것을 각오해야겠다. 내 앞에 또 어떤 만남과 사건들이 펼쳐질 지 기대하면서 흔들리는 기차를 요람삼아 잠을 청해본다.

     

    이른 아침 차장이 우리를 흔들어 깨운다. 열차는 네델란드의 아침초원을 달리고 있었다. 기차가 정차하자 우리는 잠이 들깬 얼굴을 암스텔담 역 안으로 내밀어 본다.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어 온다는 것이 처음에는 신기하기만 했는데, 막상 넘어 와보고 나니 한 국가 안에서 다른 도시로 이동해 온 기분이다. 국경을 넘기가 이렇게 쉬운데도 좁은 반도안에 갇혀 수십년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역을 나오자 복잡하기로 소문난 암스텔담의 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차가 다니는 도로보다 사람이 다니는 인도가 배로 넓은 거리는 자동차에게는 복잡하지만, 사람들에게는 편안한 거리처럼 보였다. 암스텔담 지역 특성상 바다 아래를 땅으로 메웠기 때문에, 지반이 약해서 자동차의 이동을 제한하기 위한 것 같다. 거리는 사람들과 자전거로 넘쳐 흐르고, 고작있는 좁은 도로조차도 트램철로와 겹쳐져 있어서 도저히 차를 놓고 다니지 않고서는 베기지 못할 것 같다. 바다를 막아 땅을 메우고 그 특성에 따라 주어진 환경를 극복하는 네델란드 사람들에게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지저분한 거리에 얼굴을 찡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몇개의 운하를 건너 우리가 묵고자 하는 유스호스텔에 도착해서 짧은 영어로 겨우 체크인을 했다. 유스호스텔은 세계각국의 여행객들이 묵는 곳이라 외국인 친구를 사귈 수 있어서 기대가 컸던 곳이다. 일단 침을 풀고, 자유의 도시 암스텔담을 헤매보기로 했다. 암스텔담은 마약과 매춘을 정부가 법적으로 허용한 곳이다. 하지만 흥청망청 거리는 홍등가와 대낮에도 마약에 취해 정신이 혼미해진 사람들을 보고 나면 과연 이런 것도 자유의 이름으로 허용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암스텔담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지난주 부터 계속되는 유럽의 우기로 인한 비 때문에 옷이 다 젖어서야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야간이동의 피곤함과 궂은 날씨를 핑계로 숙소에서 뒹굴거리고 있으니, 괜히 조바심이 난다. 빨리 외국인 친구를 사귀고 싶은데, 우리는 항상 네명이 팀으로 다니니까 외국인과 많은 이야기를 할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이런 조바심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 설수 있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다가서면 어떤 사람이든지 호의적으로 마음을 여는 법인가 보다. 저녁을 먹고 다들 쉬러 갈 때 한 친구를 만났는데, 외국인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욕심에 내가 먼저 호의를 베풀었더니, 그친구도 친근하게 다가 왔다.


     " Are you Chinise? NO. Are you Japanise? NO, I'm Maxican!"   "HAHA"


     동양인같이 생긴 외모때문에 내 짧은 영어로 우린 그렇게 첫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그때 멕시코 사람이 동양사람처럼 생겼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나와 달리 그 친구의 영어는 꽤 유창했다.


    다른 사람들은 피곤하다고 잠자리에 들어 갈때 그 친구와 나는 홍등가로 향했다. 혼자서는 홍등가가 위험할 것 같아 못가 보았다는 말에, 나는 선뜻 같이 가 주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보슬보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암스텔담 야밤에 멕시코 친구와 나는 홍등가를 헤매며, 개방된 네델란드의 성문화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서도 짧은 만남의 아쉬움에 커피를 대접했다. 그리고 처음 사귄 외국인 친구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국의 풍경이 담긴 엽서를 꺼내어 한장 골라보라고 했더니, 내게 한장 한장 설명해 주란다. 그래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짧은 영어로 설명해주니, 그런 내 모습이 안스러워서 인지 만족해하며 불국사 석가탑사진이 마음에 든다며 고른다. 이렇게 시작한 이야기는 자정이 가까워 질때 까지 이어졌다.


    서로의 나라에서 사는 젊은이로서 서로 알지 못했던 많은 것을 배울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메일 주소를 주고 받고 굿나잇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소심했던 내가 외국인에게 그렇게 적극적일 수 있었던 나자신이 놀라웠고, 왠지 모를 자신감도 생기게 되었다. 오늘 그렇게 먼저 다가선 내 자신이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앞으로 이루어질 만남들과 이런 자랑스러움때문에 오늘 밤은 쉽게 잠들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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