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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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다락방 이야기> 텃밭에서 몸을 씻다시골이야기 2015. 11. 13. 11:47
이슬 맺힌 텃밭을 맨다. 풀을 움켜쥔 장갑은 이미 흠뻑 젖었다. 산기슭은 아직 새벽안개로 자욱하다. 푸르스름한 빛이 어둠의 끝자락을 알린다. 낫날에 쓰러지는 풀들의 사각거림이 손끝에 전해온다. 낫이 지나간 자리에 강아지풀들이 꼬리를 내리고 눕는다. 장마가 지난 뒤 땅콩 밭이 풀에 덮여 버렸다. 잡초에 강하기로 유명한 땅콩이라지만 게으른 농부를 만난 탓에 잡초들에게 주도권을 내주고 말았다. 풀이 너무 무성해 일단 낫으로 풀을 벤 다음 호미로 뿌리를 뽑는다. 땅콩 두둑 위에 자란 풀은 내버려두고 두둑 사이 고랑만 맨다. 한 고랑을 다 매고 땀을 훔치며 뒤돌아본다. 풀숲에 갇혀 있던 땅콩 밭에 숨통이 트였다. 출근을 앞두고 머릿속을 가득 채운 고민거리도 낫질 몇 번으로 사라졌다. 산기슭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