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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인미디어 분투기>신문사를 그만둔 지 50일이 지났다
    미디어 한토막 2015. 10. 20. 12:36

    새로운 미디어를 모색하겠다며 신문사를 그만둔 지 50일이 지났다. 한 것도 없는데 벌써 50일이라니. 50일 동안 얻은 것은 무엇일까?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그렇다고 요즘 온라인매체에서 유행하는 '신문사를 그만두고 50일 동안 깨달은 5가지'라는 식의 제목은 달기 싫다. 그냥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리는 흐트러진 사고체계를 명확하게 해준다. 


    첫째, 노는 것도 내공이 필요하다. 한 달이 지나자 노는 것에 불안감이 생겼다. 뭔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 내가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기자 출신 작가인 김훈은 "놀 때 인간이 온전해지고 깊어진다"고 했지만 그 경지는 어디쯤일까. 그저 현재에 집중하면 되는 일인데도 그게 쉽지 않다. 일단 지금 이 순간 하고 싶은 것을 하는데 노력하려고 한다. 지금 이 글도 그냥 쓰고 싶어서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둘째, 몸으로 부딪혀봐야 명확해진다. 머릿속에서 수없이 고민해서 짠 계획은 엉성했다. 계획과 계획 사이의 틈은 너무나도 넓었다. 태평양이다. 그 태평양 같은 틈을 몸으로 부딪치며 채워나가야 한다. 하지만 머릿속의 장기적인 계획은 여전히 유효하다. 단,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태평양을 건널 수 있는(헤엄을 치던, 배를 타던, 다리를 놓던) 내공을 쌓아야 한다.


    셋째, 기자라는 기득권을 버리면서 초심을 얻었다. 모든 취재 현장이 소중해졌다. 예전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사진 한 컷 찍고 사무실로 돌아가서 전화 한 통으로 끝냈던 현장도, 이제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지킨다. 그래야 온전히 알 수 있다. 온전히 알지도 못한 채 다른 누구에게 전달하면 괜히 죄책감이 든다. 글에 대한 태도도 충실해진다. 신문사의 글이 아닌 온전한 내 글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은 나에게 있다. 내 호적등본에 이름을 올리는 자식 같은 글이다. 


    넷째, 매일 읽고 매일 쓴다. 불안할 때는 읽어야 한다. 내 생각 때문에 불안한 것이다. 고종석의 '문장' 같은 두꺼운 책을 펴고 저자의 생각을 무작정 따라간다. 그러면 전두엽을 가득 채우던 내 생각(고민)은 어느 순간 뇌의 뒷자리로 꺼져준다. 책을 읽다가 고민해결의 실마리까지 얻으면 금상첨화다. 책을 읽으면 평온해진다. 평정심을 되찾으면 글을 쓴다. 무슨 글이든 매일 쓴다. 거창한 것을 쓰겠다는 생각만 버리면 불안해지지 않는다. 작은 것부터 충실하게 쓴다. 게다가 시골 다락방은 책 읽기에도, 글쓰기에도 좋은 공간이다. 나약한 의지만 빼고 다 갖췄다.


    다섯째, 글쓰기 능력의 한계를 확인했다. 기자경력 10년이면 어느 정도 수준의 글쓰기 능력을 쌓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물론 어떤 사안을 정리하는 데는 익숙하겠지만, 독자들에게 가 닿는 힘이 약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할 지 매번 백지 상태다. 수없이 써보는 수밖에 없다. 


    김훈 작가의 인터뷰 한토막으로 글을 맺는다. 그 경지에 다다르기 위해 마지막 문장을 되뇐다. 




    "놀 때 인간이 온전해지고 깊어지는 걸 느꼈다. 기자를 보면 기자 같고 형사를 보면 형사 같고 검사를 보면 검사같이 보이는 자들은 노동 때문에 망가진 거다. 뭘 해먹고 사는지 감이 안 와야 그 인간이 온전한 인간이다. 그런데 노는 거, 그게 말이 쉽지 해보면 어렵다. 놀면서 돈 쓰고 돌아다니는 거는 노는 게 아니라 노동의 연장이다. 돈에 의지하지 않으면 못 노는 거는 돈 버는 노동세계와 연결돼 있어서 노는 게 아니다. 노는 거는 그 자리에 있는 세상하고 단둘이 노는 거다.

    - 김훈, '밥벌이의 지겨움' p.264 '남재일과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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