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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영씨의 시골일기<2> "하늘을 딸 거야"
    시골이야기 2016. 6. 11. 22:14


    ▲ 하늘 위의 구름

     

    서울에서는 다세대주택의 세입자로 마당은 커녕 빨래 말릴 곳도 변변치 않았다. 홍성으로 귀촌해서 얻은 집은 단독 한옥주택으로 마당이 탁 트여있다.

     

    처음 집을 보면서는 ‘담장 하나 대문 하나 없는 집에서 어떻게 살지?’ 걱정도 했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시간이 지나니 전혀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탁 트인 마당 덕분에 지나가는 이웃들과 한번이라도 더 인사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아이들은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누군지 궁금해 하고 익숙한 이웃에게는 선뜻 인사도 건넨다. 아이들은 마당이라는 공간을 편안해한다. 자연을 둘러싼 외부이면서도 엄마의 품처럼 안전한 공간임을 알기 때문이다.

     

    ▲ 구름에 이름을 붙이는 9살 호연이

     

    밀린 집안일과 아이들 뒤치다꺼리에 해도 해도 끝날 것 같지 않은 그림자 노동으로 심신과 마음이 지칠 때면 모든 걸 놓고 마당으로 나와 버린다. 문 하나를 둔 공간이지만 마당에 들어서면 내 몸과 마음은 다르게 세팅이 된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집안에서 이런 저런 일로 실랑이를 하다가도 마당에 나오면 실랑이는 금세 잊고 다른 것에 몰두한다.

     

    하루는 마당에 나와 바라보는 하늘 위의 구름 모양이 재미있어 한참을 올려다보니 9살 첫째 아들도 따라 나와 구름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세밀하게 “여긴 꼬리고, 여긴 입이야~”하며 나에게 가리킨다.

     

    어느새 흐르는 구름의 모양이 달라지자 또 다른 이름을 붙이며 들떠있다. 그 옆에 있던 5살 둘째 아들은 마당에 세워져있는 감 따는 길다린 막대를 가져오더니 하는 말이 “엄마, 나 하늘 딸거야!”라며 호기롭게 막대를 세우기에 여념이 없다.

     

    ▲ 감따는 막대를 들어보는 둘째 호승이

    ▲ 막대를 들어올리려고 노력하는 형제

     

    자기 키보다 몇 배는 더 긴 막대는 쉽게 세워지지도 않는다. 결국 형제가 함께 세워보지만 잘 안 된다. 한참을 지켜보는데 둘째 아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세워본다. 하지만 하늘에 닿지 않는 막대를 깨닫곤 막대를 휙 던지곤 어디론가 가버린다.


    작은 해프닝을 바라보면서 웃기도 하고 막대가 뒤로 넘어갈 것 같아 긴장도 한다. 그리고 집안으로 들어오니 그 말이 계속 맴돈다. “하늘을 딸 거야!”


    2016/05/29 - [시골이야기] - <마눌님의 시골일기>오디가 익어가는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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