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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영씨의 시골일기<4> 시골의 ‘장마’ 맞이
    시골이야기 2016. 6. 30. 10:12

    마음을 애태우던 비가 내린다. 그동안 마른 땅에 간신히 버티던 고구마가 몸살을 앓고 이제야 뿌리를 흙속에 잘 안착할 듯하다.


    장마예보가 시작될 때부터 시골에서는 준비할 것이 많다. 논밭을 살펴야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텃밭농사정도만 짓는 우리는 집안과 밖을 이리저리 살펴야 한다.


    ▲ 비를 맞는 고구마

     

    홍성으로 귀촌한 첫해 아무 생각 없이 장마를 맞아 난처했던 상황이 떠오른다. 화장실 변기물이 어느 순간부터 물이 잘 내려가지 않아 불편함을 감수하며 지냈다. 더 이상은 안 될 것 같아 서비스 직원을 불러 확인했다. 서비스 직원은 변기를 들어내야 한다고 하고 견적이 많이 나올 거라 했다.

     

    견적이 부담스러워 차일피일 미루다가 동네 아저씨에게 변기물이 잘 안내려간다고 얘기하니 정화조 옆에 구멍을 찾아보자 말했다. 정화조 주변의 풀들과 흙들을 한참을 정리하니 구멍이 나왔고 구멍이 나오자마자 물이 콸콸콸 쏟아지기 시작했다. 장마로 인해 흙이 쓸려 구멍을 막았던 것이다. 변기물이 시원히 내려가지 않은 것은 이것 때문이었다. 얼마나 마음이 후련하던지 그 이후부터 장마가 온다고 하면 정화조 주변을 정리했다.


    파리와 모기가 풀숲에 자리 잡고 있다가 장마 때만 되면 집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방충망에 달라붙어있는 파리와 모기들이 어떻게든 구멍을 비집고 들어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파리는 이 시기에 짝짓기를 하며 종족을 늘리기에 여념이 없다. 모기들은 물이 고인 웅덩이에 유충을 낳아 역시 종족을 늘린다. 어떻게든 늘리지 않게 하기 위해 바지런을 떨어야 한다. 물웅덩이가 되어있지 않도록 고인 물을 없애고 파리가 좋아하는 음식물쓰레기 구역을 흙을 파내어 묻어둔다. 귀촌하고 전혀 예방책을 쓰지 않았을 때에는 파리, 모기 때문에 피신 했던 경우도 있을 정도로 파리, 모기는 일상에서 우리를 힘들게 하기도 했다.


    주방은 옛날에 구들이 있던 곳이라 지대가 낮다. 장마가 시작돼 습도가 높은 날이 계속되면 주방의 곰팡이를 어찌 이겨낼 수가 없다. 주방에 있는 사람들은 안다. 장마기간 동안 물이 마를 틈이 없는 싱크대 주변에 서성이며 음식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인가를.

     

    꿉꿉한 곰팡이 냄새와 마르지 않은 그릇들을 마주하며 주방에서 밥해먹기는 피하고 싶었다. 몇 해가 지나면서 노하우가 생겨서 보일러로 바닥을 따스하게 덥혀 습도를 없애기도 하고 환기도 자주 하고 곰팡이가 생긴 벽지를 다시 뜯어 붙였다. 이것도 몇 해 반복되니 그냥 그런 일상이 되었다.


    ▲ 처마에서 떨어지는 비


    장마가 늘 불편함만 주는 것은 아니다. 비가 내리면 지붕위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귀를 춤추게 한다. 밤에 누워 비가 내리면 한참을 빗소리에 집중한다.(다락방에 누워 듣는 빗소리의 편안함은 들어본 사람만 안다.) 저마다 다른 빗소리가 연주를 하는 듯 경쾌한 음악을 연출한다.



     나무로 짜인 툇마루에 누우면 찐한 나무향이 콧속을 파고든다. 깊숙이 파고들어 심장까지 다다르면 심장의 호흡이 천천히 흐른다. 집을 나서면 이 나무향이 그리워 집으로 돌아온다. 나무향을 맞이하면 코 평수를 넓혀 천천히 깊게 들이마신다.


    텃밭의 농작물들은 물을 양분삼아 본격적인 성장에 들어간다. 간신히 자랐던 방울토마토들은 장마를 맞아 키가 쑥쑥 커서 빨간 열매를 매달고 있고 오이꽃은 떨어져 튼실한 오이를 키워낸다. 장마가 끝나면 부쩍 성장한 농작물들을 먹고 나누기에 바빠질 것을 미리 걱정도 한다.


    ▲ 오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상상한다.

     

    그 외에도 비를 머금은 흙냄새 풀냄새 나무냄새 꽃향기, 아이들의 땀 냄새까지 시골의 모든 향기는 더욱 진하게 숙성이 되어 내뿜는다. 방에 앉아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비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감성이 예민해진다. 비가 오면 우리 집에서 빈대떡이나 붙여먹자고 지인들은 꼭 한마디씩 하고 헤어진다. 그 약속이 실행된 적은 몇 번 없지만 말이다.


    장마가 시작되었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기에 불편함은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만들고 즐길 수 있는 부분은 맘껏 즐기며 이 장마도 맞이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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