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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대녕 <사라지는 공간들, 되살아나는 기억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독서방 2015. 11. 13. 11:18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 - 10점
    윤대녕 지음/현대문학



      나는 남을 의식하는 편이다. 내 기분보다는 남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를 더 신경 쓴다. 어릴 때부터 자신보다는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살아온 일종의 ‘장남 콤플렉스’이다. 몸에 밴 이러한 습관 때문에 나는 나를 잘 모른다. 장녀로 태어났지만 남의 시선보다 항시 자신의 마음을 중요시 여기며 사는 ‘옆지기(내자)’는 나더러 “자신을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연애시절부터 10년 넘게 듣고 있는 말이지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이 책에서 작가는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외로웠던 유년기와 방황하던 10대부터 30대, 그리고 40대의 고뇌와 50대인 현재 모습까지 자신의 삶을 한 권의 책으로 반추했다. 흥미진진하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을까마는 작가의 인생은 한 편의 소설 같았다. 부모와 떨어져 조부모와 함께 지내던 유년기는 40대가 될 때까지 방황하는 작가의 인생을 암시하는 일종의 복선이었다. 의미 있는 방황이 그를 한국의 대표적인 소설가로 키워냈을 지도 모른다. 유년 시절로 돌아가 인생을 복기하며 그동안 겪었던 에피소드들이 현재의 자신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지 또박또박 짚어본다. 작가는 이러한 복원의 글쓰기를 통해 “삶이 내게 남겨준 것이 무엇인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라고 적었다.


    자신의 인생을 소설처럼 엮어내는 작가의 능력이 부러웠다. 특히 까마득한 유년기 시절의 세세한 부분을 복원해내는 기억력이 놀라웠다. 반면 내 기억의 파편들은 하나의 서사가 될 만큼 충분하지 못하다. 어릴 적 경험들은 이미 기억 너머 저편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작가는 “글로써 남기지 않는 한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져 다시는 떠올릴 수 없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글을 썼기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이렇듯 또렷이 기억(어쩌면 기록)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동안 줄곧 일기라도 쓰지 않은 것이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다.


    작가와 나는 열아홉 살 차이가 난다. 그가 대학에 입학했던 해에 내가 태어났다. 대학교 1학년 때 그의 소설 ‘은어낚시통신’을 읽은 이후 15년 동안 여러 번 그의 작품과 마주쳤다. 세대 차이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그의 작품에 공감이 간다. 작가의 인생이 담긴 이번 에세이집은 더욱 더 그랬다. 이 책에 담긴 고향, 조부모,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작가만의 특별한 경험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경험이기도 하다. 한 인간의 역사를 구성하고 있는 이러한 소재들은 세대를 넘어선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인생 이야기를 읽다가 보면 기억상실의 절벽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던 나의 과거가 되살아나기도 했다. “사과밭에서 안개처럼 밀려들어오는 과육 향기”라는 구절에서 여름방학 외갓집 툇마루에서 맡았던 갓 딴 복숭아 향이 코끝에 스며들었고, “가을이 되면 사과가 발끝에 채여”라는 표현에서 특산물이 쥐포라 집집마다 쥐포를 말리던 풍경과 바닥에 버린 쥐치 껍데기를 피해서 걷던 고향집 골목길이 떠올랐다.


    결국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재구성하면서 자신을 이해하는 수밖에 없다. “집의 중심이며, 곧 삶의 배꼽”이자 “부재했던 어머니의 자궁을 대신한 공간”인 부엌에서, 자신은 “먹이를 받아먹으며 몸을 불려가던 커다란 태아”였다고 작가가 깨닫듯이 말이다. 작가는 부모와 함께 살게 된 “아홉 살로 다시 태어나 어미의 부엌에서 어미의 슬픔을 먹고 성장”했다고 고백한다.


    망각의 동물인 인간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쉽게 잊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 기억 하나하나는 현재의 나를 구성하는 소중한 경험들이다. 외면하고 싶었던 기억도 끄집어내 당당히 두 눈을 뜨고 직시해볼 일이다. 현재 나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모습이 과거의 어떤 경험에 연유하고 있는지 곰곰이 살펴봐야겠다. 자신을 들여다본다. 나를 찾아 떠나는 과거로의 여행이다. 지금의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지 더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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