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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덕이 회사를 살릴까(3)-도덕에 대한 새로운 접근, ‘직관’
    독서방 2016. 2. 1. 20:22



     

    이제 첫번째 글에서 제기한 도덕에 관한 오해를 하나씩 풀어보고자 한다. 먼저 ‘도덕은 따분하다’라는 개인적이지만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오해다. 지금까지 우리가 배운 도덕을 생산하는 일은 철학자의 몫이었다. 플라톤, 칸트, 벤담과 같은 이성적 추론과 체계화 능력이 뛰어난 철학자들이 도덕을 만들면 우리는 따라야만 했다. 시키는 대로 따르는 것도 마뜩치 않은데 이들의 저서는 난해하기까지 하다. 따분함의 책임은 이해력이 떨어지는(단지, 천재 철학자에 비해)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기 어렵게 도덕을 만든 그들에게 있다. 


    벤담은 체계화 능력은 뛰어났지만 공감 능력이 낮은, 어쩌면 자폐증의 하위 형태인 ‘아스페르거 증후군’에 가깝다고 분석한 논문도 있다. 자폐증 연구 선구자인 사이먼 배런코언의 정의에 따르면 공감 능력은 “상대방이 어떤 감정과 생각을 가졌는지 알아내고 나아가 거기에 적절한 감정으로 반응하려는 힘”이다. 칸트도 공감 능력에서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칸트와 벤담의 저서는 ‘상대를 적절한 감정으로 반응하려는’ 노력이 거의 없어 이해하기 쉽지 않다(그래서 지루하다). 도덕은 공감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 너와 내가 공감하지 않는 규약은 한 집단의 공통적인 도덕이 될 수 없다. 이러한 도덕은 강압이 될 수밖에 없다. 현대사회의 공공정책, 법률의 철학적 토대를 마련한 이들의 공로는 높이 살만 하다. 하지만 도덕을 이성이 만든 아성 맨 꼭대기에 올려놓고 일반인들이 우러러 보게 만든 책임은 분명히 있다. 그들의 저서에서 일반인들이 유일하게 공감하게 만든 것은 ‘도덕은 따분하다’는 것뿐이다.


    진화론이 만든 타임머신을 타고 사춘기에 접어든 한 원시인이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고 고민을 시작했던 그 시기로 돌아가 보자. 소규모 무리 생활을 시작한 200만 년 전이거나 현재 우리와 똑같은 크기의 뇌를 가진 조상이 나타난 60~70만 년 전 일수도 있다. 혈기왕성한 이 사춘기의 원시인은 처음으로 어른 원시인과 함께 매머드 사냥에 나서게 됐다. 첫 사냥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으로 전날 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고 고민하던 사춘기 원시인은 무리에서 가장 용감한 원시인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사냥 당일 창으로 매머드를 죽인 주인공은 베테랑 어른 원시인이었지만, 최초로 어린 매머드를 발견해 소리 친 이는 사춘기 원시인이었다. 함께 사냥에 나선 어른 원시인들은 그의 용기를 칭찬했다. 무리로 돌아와 사냥한 매머드를 나눈다. 사춘기 원시인은 제법 큼지막한 고기를 얻었다. 그런데 같은 무리에 있던 건달 원시인이 사춘기 원시인의 고기를 빼앗아갔다. 게다가 건달 원시인은 이날 늦잠을 자느라 매머드 사냥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어른 원시인들은 건달 원시인을 두들겨 패고 무리에서 쫓아냈다. 다른 무리에도 속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건달 원시인은 달을 보며 생각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가 지어낸 이야기지만, 도덕의 형성은 이렇게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어른 원시인들은 자신의 고기를 뺏기지도 않았는데 부정행위자인 건달 원시인을 벌하고 쫓아냈다. 그렇지 않으면 무리 내에서 사냥에 협력하지 않고 고기를 얻으려는 무임승차자들이 많아진다. 그러한 무리는 매머드 사냥에 성공하기 어렵고 무리의 구성원은 굶어 죽을 수도 있다. 생존 문제다. 이런 일이 수십만 년간 반복되면서 공평성과 부정행위에 대한 도덕적 기반이 유전적으로 각인됐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는 사회에서 부정행위를 저지르거나 무임승차자가 있으면 나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어도 벌을 주고 싶어 하는 것이다. 내가 지어낸 이야기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며 회개한 건달 원시인이 다시 무리로 돌아와 용서를 받고, 매머드 사냥에 적극 참여해 이 무리는 더 큰 매머드를 사냥했다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용서하고자 하는 도덕적 감성도 여기서 기인했을 수도 있다. 도덕은 집단의 이익, 곧 나의 생존에 도움이 된다.


    도덕심리학자인 조너선 하이트는 그의 저서 <바른 마음>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도덕을 접근한다. 그는 ‘도덕적 기반 이론’을 통해 우리 조상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주어진 여러 가지 도전과제를 수십만 년 동안 적응하는 과정에서 인지 모듈을 진화시켰고, 이것이 ‘도덕적 직관’을 갖게 한다고 설명한다. 하이트가 인지학자의 연구를 해설한 내용에 따르면, 모듈이란 “모든 동물이 뇌 속에 갖고 있는 조그만 스위치 같은 것”이다. 예를 들어 “상당수 동물은 뱀을 생전 처음 보는 순간에도 두려움 반응을 보이는데, 이는 뱀 감지 장치처럼 뉴런 회로가 그들의 뇌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생존에 관련된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 유전적인 변화가 일어나 우리 몸속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도록 하는 어떤 장치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신경학자 게리 마커스의 설명을 빌리면, 우리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뇌 위에 도덕에 관한 초고를 쓴다. 이 초고는 조상이 유전적으로 물려준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 인간이 태어나면 학습과 경험을 통해 초고를 고치면서 한 권의 도덕책을 완성해 나간다. 중요한 것은 도덕이 “경험 이전에 구조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결코 우리가 태어날 때 뇌는 백지상태가 아니다. 살면서 고쳐나가지만 뇌에는 억겁의 시간 동안 누적된 진화적 유래가 적혀 있다.


    하이트의 도덕 접근법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직관이 먼저이고 전략적 추론은 그 다음”이라는 것이다. 이성주의 철학자들(앞에서 언급한 플라톤, 칸트, 벤담은 이성으로만 도덕을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과 전혀 다른 접근법이다. 사람들은 즉각적이고 감성적으로 도덕적 판단을 내린 다음, 이성을 이용한 추론을 통해 이를 정당화 한다는 것이다(믿고 싶은 것에 대한 정보만 받아들여 정당화하는 우리의 ‘확증편향’은 이런 이성의 역할을 잘 보여준다). 하이트의 심리학적 실험에 따르면 어떠한 도덕적 상황을 접했을 때 ‘뭔가 잘못된 것 같아. 그렇다면 잘못된 이유가 뭐지?’라는 순서로 반응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도덕적 직관’이 있다고 설명한다. 뇌과학으로 증명된 근거도 있다. 뇌의 감정영역이 사라진 환자들은 도덕적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또한 실험자에게 도덕을 위반하는 상황을 보여주고 자기공명영상으로 뇌를 관찰한 결과 감정 처리와 관련된 뇌 영역이 곧바로 활성화됐다.


    진화과정을 통해 모듈 방식으로 작동하는 도덕적 직관을 얻었다. 중요한 것은 생존이다. ‘생명을 위협하는가, 도움이 되는가?’ 이러한 판단에 최적화된 것이 동물의 뇌다. 이들은 무의식적으로 판단한 다음 의식적으로 이를 정당화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 정당화하느라 시간을 끄는 동안 잡혀 먹히고 만다. 인간은 집단생활을 하면서 생존에 대한 반응이 다양해졌다.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도덕은 복잡해졌지만 추론 과정을 거치지 않는 도덕적 직관은 몸속에 내재되어 있다. 변하지 않는 사실은 도덕이 생존에 도움이 되는 도구라는 점이다. 이성을 이용해 머리 아프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도덕, 우리의 생존에 필요한 도덕이라면 더 이상 따분하지 않을 것이다. 도덕을 따분하게 생각했다가 큰 코 다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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