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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영씨의 시골일기<7>시골 마을의 커뮤니티센터, 구멍가게
    시골이야기 2016. 8. 10. 14:23

    30년 전 초등학생 시절 동네마다 구멍가게가 있었다. 구멍가게란 말 그대로 조그만 구멍처럼 작은 가게를 말한다. 일주일 용돈 200원을 갖고 구멍가게에서 무얼 살지 한참을 고민하고서야 물건을 고를 수 있었다. 구멍가게 주인 딸이 내 친구였는데 방안에 앉아 돈을 받던 그 친구가 너무나 부러웠다. 그 친구는 ‘구멍가게에 있는 모든 물건을 맘대로 가질 수 있겠지’라는 상상을 했다.

     

    구멍가게 주인은 동네 사람들의 안면을 모두 다 알고 있다. 그 사람이 어디 사는지 숟가락은 몇 개인지 집안에 뭔 일이 있는지 뻔히 아는 주인은 그 사람을 보고 외상도 자주 해줬다. 나 또한 외상으로 먹은 아이스크림이 꽤 된다. 외상값이 쌓이면 엄마는 구멍가게에 가서 종이장부를 확인하고 외상값을 지불한다. 구멍가게 앞은 평상이 있었다. 평상에는 할아버지들이 누워있었다.

     

    구멍가게 앞은 늘 아이들이 있었다. 친구들을 만나고 싶으면 저녁이어도 구멍가게를 찾았던 기억이 있다. 놀고 있는 아이들을 평상에 있는 할아버지가 지켜보곤 했었다. 그때는 ‘왜 저렇게 심심하게 앉아있지’라고 생각했는데 나이 들어 아이를 낳고 할아버지가 손주를 대하는 모습을 보니 가게 앞에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어떤 즐거움일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6년 전 귀촌했을 때 내가 사는 시골마을에는 구멍가게 하나 없었다. 대신 건넛마을에 할머니가 운영하시는 구멍가게가 있었다. 아이가 5살 때 구멍가게에서 과자 하나 사려고 건넛마을로 아이의 걸음으로 30분을 걸어갔다. 구멍가게의 과자는 유통기한이 훌쩍 넘은 것도 있고 종류도 10여 가지가 되지 않았다. 구멍가게보다는 읍에 있는 마트에 가서 한꺼번에 사오거나 남편에게 부탁해 물건을 사오기도 했다. 그렇게 구멍가게는 내 생활과는 먼 문화가 되었다.


    ▲ 마을의 구멍가게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구멍가게 할머니가 편찮으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 이후로 구멍가게 문은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그런데 구멍가게만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고된 농사일을 마치고 시원하게 술 한 잔 걸치며 이야기를 나누었던 광경이 사라졌다. 구멍가게를 지나가면 늘 문 앞에 놓인 파라솔 의자에 몇몇 아저씨와 할아버지들이 마른안주와 김치를 안주삼아 술 한 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술이 더 들어가려하면 할머니의 호통으로 자리를 마무리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농사의 어려움, 날씨의 어려움, 경제의 어려움, 이것저것 말들을 풀어내고 서로를 격려하며 그곳에서 위안을 받았다.


    아주머니가 우유를 사러 구멍가게에 들어가면 우유만 고르고 값을 계산하지 않는다. 일단 서로의 안부부터 챙긴다. “할머니 요즘 건강은 괜찮아요?” “딸기 농사는 요즘 어때?” 서로의 근황이 어느 정도 파악이 되면 그제야 우유 하나 값을 지불하고 아주머니는 문을 나선다.


    아이들은 몇 가지 되지 않는 과자지만 엄마, 아빠를 졸라 용돈을 타내서 구멍가게로 향한다. 과자 하나를 사면 구멍가게 앞은 아이들의 놀이터로 변한다. 아이들의 재잘거림을 듣고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하나씩 모여든다. 과자 하나를 아이들끼리 나눠먹으며 놀이가 만들어진다.


    구멍가게에 가면 마을의 궁금한 여러 가지 소식을 들을 수 있다. 동네 할아버지가 요양원으로 향한 이야기부터 할머니집이 불에 타 큰일날 뻔했다는 이야기까지 구멍가게는 이야기의 중심이었고 이야기의 마무리였다.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구멍가게의 할머니를 통해 이웃에게 전달이 되고 서로 십시일반 도와주는 문화도 가능했다.

     

    이제 구멍가게는 사라졌다. 작고 초라하지만 마을의 커뮤니티를 담당했던 센터, 구멍가게는 사라졌다. 구멍가게는 단지 물건 몇 개 사고 마는 가게의 역할이 아니었다. 마을의 공동체를 유지하고 마을의 사람들을 모으는 사람과 사람의 연결고리였다. 이제는 이런 구멍가게를 만나는 일은 흔치 않다. 마을의 커뮤니티는 공중에서 떠돌고 사람과 사람의 연결고리는 사라졌다.


    이른 새벽 마을길을 따라 걷다가 구멍가게가 궁금했다. 물건들이 오래됐다고 물건들의 종류가 없다고 외면한 구멍가게를 찾아갔다. 구멍가게가 빈 공간으로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누군가가 할머니를 대신해 다시 운영해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욕심도 가져보면서 구멍가게를 천천히 지나갔다.


    오늘따라 구멍가게가 너무나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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