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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빠가 쓴 솔이의 탄생사
    육아일기 2016. 2. 3. 13:59




    솔직히 겁부터 났다. 28살 내 인생 계획에 출산은 없었다. 시골로 내려가고 싶어하는 아내 때문에, '출산'은 곧 나에게 도시를 떠날 시간이 더 빨리 다가왔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출산은 나중의 일이라 생각했다. 도시에서 내가 이루고자 했던 최소한은 마련해 놓고 아이와 함께 내려가야 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는 나에게 임신테스트기를 내 보이며 웃기만 한다. 아내가 내 손을 잡고 처음으로 산부인과에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솔직히 임신테스트기가 잘못 됐기를 바랬다. 옥탑 단칸방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도 걱정이었고 기저귀값, 분유값도 걱정이었다. 나는 아직 아빠로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기저귀는 천기저귀 쓰면되고, 모유 먹일 테니까 분유값 걱정할 필요도 없어."

     

    나보다 두 살 많은 아내가 누나처럼 타이른다. 그러나 나는 벌써 아내가 출산으로 직장을 그만두면서 발생할 수입감소와 내 월급으로 생활이 가능할 지를 머리속으로 계산하면서 여전히 불안해 하고 있었다.

     

    아기집을 확인하고 나서부터는 뱃속의 아이가 잘못되면 어떻게 하나 노심초사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유산됐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불안해 했고, '자궁외 임신'이니, 아기집에 아기가 없다는 '계류유산'이니 하는 단어를 인터넷으로 검색하면서 혼자서 불안함만 키우고 있었다. '그때부터는 단지 솔이가 건강하게만 태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뭐 산 입에 거미줄이라도 치겠어. 아이는 자기 밥 숟가락 하나는 들고 태어난다잖아.'

     

    솔이가 엄마뱃속에 자리를 잡기 시작할 무렵, 나는 마음을 고쳐 먹고 아이를 맞이할 준비에 돌입했다. 제일 처음 마음 먹은 것이 '이사'였다. 옥상 마당에서 삼겹살도 구워먹고, 상추도 깻잎도 키우고 여름밤이면 돗자리 펴놓고 잠들었던 옥탑방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또다시 푹푹 찌는 여름이 오기 전에 1층 방 두칸 짜리 집을 마련해야 했다.


    뒷산이 있는 동네로 이사를 가다.


    신혼생활의 추억이 쌓인 옥탑방을 떠나야 했다. 여름에는 푹푹 찌고 겨울에는 덜덜 떨어야 하는 옥탑방은 태어날 '솔이'에게는 무리였다. 이사비용도 만만치 않았지만 우리에게는 이사할 동네가 더 중요했다.

     

    "명진아, 동네에 뒷산이라도 없으면 서울에서 못 버틸 것 같아"

     

    무엇보다 뒷산이 있어야 했다. 아내에게 뒷산은 서울에서 살아가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그리고 솔이가 태어나서 흙을 밟으며 뛰어놀기 위해서라도 뒷산이 있는 동네로 이사를 가야 했다.

     

    또 하나의 조건. 아는 사람이 많아야 했다. 나라는 인간은 동네 이웃들이 없으면 숨이 턱턱 막히는 사람이다. (사람들이랑 어울려 술 먹기 좋아하고, 당구치기 좋아하는 나!) 동네에 아는 사람이라도 없으면 강원도 산골짜기보다 더 외로운 게 서울생활이 아니던가.

     

    이 두 조건에 딱 맞는 곳이 있었다. 바로 관악구 봉천9동 국사봉. 우리는 뒷산이 있는 동네가 아니라 아예 뒷산 중턱에 자리 잡은 달동네로 이사 가기로 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내가 좋아하는 '관악청년회' 사람들이 있었다. 참고로 우리 집은 동네 약수터랑 같은 수평선상에 있다. 집에서 오르막 없이 산길로 옆으로 옆으로 15분만 가면 약수터가 나온다. 태아산책으로 주로 이용하는 코스다.

     

    약수터로 산책만 하던 아내가 한번은 정상까지 오르겠단다. 오해하지 마시라. 국사봉은 고작 해발 179미터에 불과하니. 그래도 38주 만삭의 임산부가 산 정상에 오르는 건 무리라고 생각해서 괜찮겠냐고 물었다.

     

    "지난번에 한번 올라갔는데 갈만 하던걸."

     

    대단한 여성이다. 부른 배를 안고 산 정상에 올랐더니 동네 사람들 눈길을 한꺼번에 사로잡니다. 다들 놀라워하는 눈치다.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는 그녀 "막달이 되어가니까 아기가 내려가서 오히려 숨이 덜 찬 걸". 우리 솔이가 이런 아내를 닮았다면 분명 건강할 거다. ^^

     

    우리가 봉천 9동을 택한 또 하나의 이유. 바로 사람이다. 내가 활동하는 '관악청년회'에는 같은 해 출산을 앞둔 가족이 우리 말고도 두 가족이나 있었다.

     

    봉천동으로 이사 가자고 아내를 구슬릴 수 있었던 것도 이 이유 때문이다. 같은 또래에 애 낳고 같이 지내면 육아하는 게 좀 더 즐겁지 않겠냐고. 공동육아 교사를 했던 아내도 내심 좋아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임신한 이들은 하나 둘, 분당으로 연신내로 멀리 멀리 떠나고 말았다. 봉천동 집값이 너무 오른 게 큰 이유였다. 아내의 실망은 이만 저만이 아니다.

     

    요즘 주말이나 밤에 내가 당구 치러 나가거나, 술 마시러 나갈 때면 아내는 이렇게 투덜거린다.

     

    "네가 맨날 놀러 다니려고 봉천동 오자고 한 거지? 내 친구들은 언제 만들어 줄거야!"

     

    찔린다. 이런 마음이 없던 것도 아니였으니....

     

    다행히 지난해 10월에 결혼한 또 다른 청년회 가족이(이 가족은 결혼하고 봉천동에 신혼살림을 꾸렸다.) 올해 임신을 준비하고 있단다.

     

    어여 임신해서 순영이 친구도, 솔이 친구도 만들어 줘야 할 텐데...


    * 예전 블로그에 썼던 글을 옮긴 겁니다.


    2016/02/03 - [육아이야기] - 엄마가 쓴 솔이의 탄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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